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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박은석 Nov 15. 2023

사람이 우리를 편안하게 한다


내 어릴 적 우리 동네의 집들은 띄엄띄엄 떨어져 있었다.

옆집에 가려면 마당을 건너지르고 대문을 나와서 족히 100미터는 걸어야 했다.

어머니가 옆집에 심부름이라도 보내는 날이면 그만큼의 거리를 걸어 다녀와야 했다.

물론 집들이 모여 있기도 했지만 그런 경우에는 이 집과 저 집 사이에 울타리가 쳐져 있었다.

울타리를 빙 돌아서 대문을 찾아 들어가려면 그래도 100미터는 걸어야 했다.

간혹 옆집과 다닥다닥 붙어 있는 집들도 있었다.

그런 경우에는 옆집까지의 거리가 조금 줄어들기는 했다.

어쨌거나 내 어릴 적 집들은 서로 떨어져 있었다.

그런데 참 이상하기도 하다.

그렇게 떨어져 지냈는데도 옆집의 사정을 너무 잘 알고 있었다.

부모님들만 그런 게 아니라 우리와 같은 아이들도 그랬다.

옆집에 텔레비전이 새로 들어왔는지, 옆집 부모님이 간밤에 부부싸움을 했는지, 옆집의 제삿날이 언제인지 너무도 잘 알았다.




어른이 된 후 내가 사는 집들은 옆집과 딱 붙어 있다.

옆집에 가려면 현관을 나와서 두 걸음만 옮기면 된다.

아랫집과 윗집은 열댓 걸음만 가면 된다.

내가 사는 집만 그런 것이 아니라 우리 집에서 근처에 있는 빌라들도 그렇다.

건물 한 채에 적어도 3가정이 모여 산다.

무척 가깝게 사는 것이다.

그런데 그렇게 가까이 살고 있으면서도 옆집의 사정을 너무 모른다.

우리만 모르는 게 아니라 옆집도 우리 집의 사정을 모른다.

옆집 사람들이 이사 갔는지, 새롭게 이사 왔는지, 그 식구가 몇 명인지도 모른다.

아랫집에 연세 많은 할머니가 계셨는데 어느 순간부터 그 할머니가 안 보인다.

어디로 가셨는지 무슨 일이 있는지 전혀 모른다.

나도 아랫집에 물어보지 않았고 아랫집에서도 나에게 알려주지 않았다.

참 이상도 하다.

분명히 가깝게 붙어서 살고 있는데 멀리 아주 멀리 떨어져서 사는 사람들처럼 서로가 서로를 너무 모른다.




사람이란 참 이상한 존재다.

사람이 무섭다고 하면서도 막상 사람이 안 보이면 불안해한다.

사람과 떨어져서 혼자 있겠다고 하면서도 막상 혼자 있게 되면 사람이 보고 싶다며 사람이 있는 곳으로 다가온다.

시골에 있을 때는 흙과 풀과 나무로 둘러싸인 시골이 답답하다며 도시로 떠나고 싶어 한다.

그렇게 도시로 떠나와서 살아가다 보면 무겁게 내려앉은 도시의 공기가 너무 답답하며 이번에는 시원하게 탁 트인 시골로 가고 싶어 한다.

좋은 기계만 있으면 살아가는 데 문제가 없다고 한다.

그래서 온갖 좋은 기계를 만들었다.

기계가 빨래를 대신해 주고 밥을 대신 지어주고 청소도 대신해 준다.

가만히 누워서 말 한마디만 하면 텔레비전 채널도 알아서 척척 바꿔준다.

모르는 게 있으면 “지니야~” 불러서 물어보면 된다.

애인이 없는 사람에게는 기계가 예쁜 애인도 되어준다.

정말 멋진 신세계이다.

세상 살기가 참 좋아졌다.




이렇게 좋은 세상을 살아가니까 얼마나 편하냐고 한다.

심심하면 텔레비전을 틀면 되고 컴퓨터를 켜고 인터넷에 접속하면 세상 어디와도 연결된다.

손에 들린 스마트폰만 있으면 몇 시간이든 재미있게 지낼 수 있다.

그런데 텔레비전으로도, 컴퓨터로도, 스마트폰으로도 채울 수 없는 무엇인가가 있다.

그것이 채워지지 않아서 이 편하다고 하는 세상 속에서 외롭게 살아가고 있는 사람들이 많다.

외로움은 불안을 불러오고 불안은 두려움을 가져온다.

내 어릴 적 우리 동네에서는 이런 두려움과 불안과 외로움은 없었던 것 같다.

그때는 지금보다 훨씬 살기 힘들고 불편했었는데 지금보다 훨씬 편안했던 것 같다.

왜 그런 생각이 드는 것일까? 아마도 그때는 지금으로서는 채우기 힘든 것들이 많이 있었기 때문일 것이다.

그때는 문밖에만 나가면 언제나 볼 수 있었던 것이 있었다.

그것이 우리를 편안하게 했다.

그것은 바로 사람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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