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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박은석 Nov 04. 2023

행운을 만드는 사람


<세렌딥의 세 왕자>라는 동화가 있다.

세렌딥(serendip)은 스리랑카의 옛 이름인데 옛날 세렌딥의 왕 지아페르는 자신의 세 왕자에게 나라를 지키기 위해서 필요한 보물들을 찾아오라고 명했다.

세 왕자는 죽음의 위협을 당하기도 하고 전쟁의 현장에 끼어들기도 한다.

하지만 그때마다 지혜를 발동하여 난관들을 헤쳐 나오고 아름다운 공주들과 각각 결혼을 한다.

이 이야기를 좋아했던 영국 작가 호레이스 월폴(Horace Walpole)은 세렌딥이라는 단어를 변형시켜서 ‘세렌디피티(serendipity)’라는 말을 만들어냈다.

1754년 친구에게 보내는 편지에서 이 말을 사용했는데 이후 이 말은 '우연히 찾아온 행운'이라는 뜻으로 불리게 되었다.

세렌디피티라는 어감도 좋아서 많은 사람이 사랑하는 말이 되었다.

세렌딥의 세 왕자가 우연히 행운을 얻어서 난관을 극복했다면 호레이스 월폴은 우연히 행운을 얻어서 새로운 말을 만들어 냈다.




역사를 돌아보면 행운은 언제나 우연히 찾아왔다.

궁예의 부하였던 왕건이 고려를 개국한 것은 행운이었다.

점점 미쳐가는 궁예 밑에서 숨죽이며 살 뻔했다.

궁예에게 맞아 죽지 않은 것만으로도 행운이었다.

그런데 그가 우연한 기회에 궁예를 물리치고 왕이 되었다.

이성계가 정도전을 만난 것은 정말 우연이었다.

그리고 행운이었다.

변방의 싸움꾼이었던 이성계가 조선이라는 새로운 나라를 개국할 줄은 꿈도 꾸지 못했다.

그런데 우연히 행운이 찾아왔다.

이순신 장군이 거북선을 개조한 것도 우연이었다.

다른 방법으로 전쟁을 치를 수도 있었고 다른 배를 만들 수도 있었다.

그러나 이순신은 거북선을 개조하였다.

거북선을 활용하여 전쟁하는 방법을 익혔다.

행운이었다.

그러나 원균에게는 그런 행운이 오지 않았다.

이순신보다 훨씬 좋은 여건이었지만 원균은 패했다.

행운은 아무에게나 오는 게 아니라는 사실을 잘 보여주었다.




2차 세계대전 때 노르망디 상륙작전이 성공한 것도 우연이었다.

독일군이 노르망디에 조금만 신경을 더 썼더라면 상륙작전은 완전히 실패할 수도 있었다.

동부 전선에 뛰어든 독일군이 스탈린그라드 전투를 치르지 않았다면, 덩케르크에서 연합군이 독일군에게 격퇴되었더라면 노르망디 상륙작전은 계획도 할 수도 없었을 것이다.

한국전쟁 때 인천상륙작전의 성공 확률은 5000분의 1이었다.

이 정도면 성공할 확률이라고 말하기는 낯부끄럽다.

실패할 확률이 5000분의 4999라는 말이니까 누가 보더라도 실패할 일이다.

맥아더 장군이 확신에 찬 목소리를 냈지만 다른 사람들은 동의하지 않았다.

이런 작전에 배팅을 해서는 안 된다고 했다.

그러나 우리는 불가능하다는 그 일을 성공시켰다.

5000번 중에서 한 번 오는 그 우연한 행운을 잡은 것이다.

덕분에 지금 나는 이 땅 대한민국에서 편안하게 지내며 잘 먹고 잘살고 있다.




지금껏 살아오면서 우연 아닌 게 없고 행운 아닌 게 없다.

제주도 총각이 서울 아가씨를 만나 결혼한 것은 엄청난 행운이다.

결혼 후 6년 만에 딸을 낳은 것도 행운이다.

3년 후에 아들을 낳은 것도 행운이다.

물론 행운은 노력하는 자에게 온다고도 한다.

하지만 행운은 우연히 찾아오는 게 맞는 것 같다.

노력의 결과로 얻는 것은 대가이다.

내가 열심히 노력했으니까 그 정도는 받아야 마땅하다고 생각한다.

그러나 행운은 좀 다르다.

“이게 웬 떡이야?” 하며 감탄부터 한다.

천만다행이라는 말이 곁들여 나온다.

내가 이것을 받을 자격이 있는지 돌아보게 한다.

감사한 마음이 든다.

우연히 찾아온다는 행운, 세렌디피티는 나를 겸허하게 만든다.

사실은, 나에게 이런 행운을 주려고 많은 사람이 신경을 써 주었다.

그들이 나에게 행운을 만들어준 것이다.

그들이 나에게 했던 것처럼 나도 누군가에게 행운을 만들어주고 싶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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