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박은석 Oct 20. 2020

내일도 오늘처럼 파란 하늘을 볼 수 있기를

골수이식 수술을 앞둔 형님을 생각하며


친한 형님이 내일 골수이식 수술을 받는다. 골수 공여자는 형님의 아들이다.

심장이 ‘쿵’하고 울린다.

얼마나 얼마나 마음 아플까?

절대로 절대로 안 된다고 고집부렸을 것이다.

아비가 되어서 아들에게 하늘을 주고 땅을 주어도 부족한데 어떻게 아들의 것을 받는단 말인가?

그런 심정이 있었을 것이다.


아들의 얼굴을 어떻게 쳐다볼까?

미안해서 눈물만 나왔을 것 같다.

그 형님 눈물도 많은데.

그런데 형님에게는 선택할 수 있는 방법이 없다.


벌써 일주일 전에 입원해서 방사선치료, 항암치료, 면역억제 치료를 받았다.

나는 그 말만 들어도 두렵다.

형님은 이를 악물고 견뎠을 것이다.


아들도 입원해 있다.

몸에 조금이라도 이상이 있으면 안 되고 감기 기운이 있어도 안 된다.

그리고 기회는 이번 단 한 번밖에 없다.




10년 전에 신장이식 수술을 받은 분을 알고 있다.

그 분도 아들의 신장 하나를 이식받았다.

수술도 잘 끝났고 경과도 좋았다.

아들도 건강을 회복하여 잘 지내고 있다.


그 분은 아들 가까이에 살면서 아들 며느리가 출근하면 손자를 돌보고 계신다.

그런데 늘 아들에게 미안한 마음이시다.

혹시 아들이 조금이라도 피곤해 하거나 아프기라도 하면 마치 자신의 잘못인 것처럼 조마조마해지신다.

아침저녁으로 며느리를 대할 때마다 미안한 마음이 일어난다고 하신다.

아들과 며느리는 괜찮다며 너무 걱정 마시라고 말씀드리지만 아버지의 마음은 그렇지 않다.

‘못난 애비다!’하는 심정을 떨칠 수가 없으신 것이다.

아버지가 아들의 사닥다리가 되어야 하는데 올라가는 아들을 잡아당겨 끌어내리게 한 것 같아 정말 미안한 것이다.




나는 그런 생각 하지 마시라고 말씀드렸다.

아들이 아버지를 위해서 효도할 수 있는 기회를 얻은 것이라고 에둘러 표현하였다.

어렸을 때 읽었던 전래동화에는 그런 이야기가 많았다.

기력을 잃은 부모님을 위해서 손가락을 잘라 피를 먹인 아들 이야기나 한겨울 눈길을 헤치며 부모님께서 드실 음식을 구해온 자식 이야기들이 있었다.

그러나 그 어떤 좋은 말로 빙빙 돌려 말해도 아들을 향한 아버지의 마음을 달랠 수가 없다.


입장을 바꿔서 만약 내가 내 아들의 장기를 받는 상황이라면 나도 감당이 안 될 것 같다.

아들의 인생을 망쳐버렸다는 죄책감을 평생 짊어지며 살 것 같다.

신체발부수지부모(身體髮膚受之父母)라고 했는데 거꾸로 아들의 장기를 이어받았으니 무조건 건강하게 오래오래 살아야 한다는 생각만 가득할 것이다.




그 형님에게 전화라도 한 통 드리려고 했는데 차마 전화번호를 누를 수가 없었다.

수화기 너머에서 들려올 목소리에 무슨 말이라도 해야 하는데 차마 말이 안 나올 것 같았다.

그래서 그냥 문자메시지만 짧게 보내드렸다.

구구절절 문장을 만들기도 어려웠다.


“형님, 힘내세요. 기도합니다.”

기도하겠다고 하지 않고 기도한다고 썼다.

내 마음이 지금 형님 생각으로 간절하기 때문이다.


이럴 때는 하나님을 믿고 있다는 것이 그나마 힘이 된다.

결과는 내가 소원하는 대로 되든지 아니면 내가 생각하기도 싫은 방향으로 가든지 둘 중의 하나이다.

선택하는 것이 아니라 하늘만 바라보면서 기다리는 것이다.


1019일 오후 4시.

오늘따라 하늘이 미치도록 파랗다.

내일 이맘때쯤이면 수술이 끝날 것이다.

그때 형님이 오늘처럼 파란 하늘을 볼 수 있으면 정말 좋겠다.

내가 할 수 있는 일이라곤 그렇게 기도하는 것밖에 없다.

작가의 이전글 내가 행복하면 세상이 바뀐다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