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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박은석 Oct 21. 2020

아빠는 우리 집의 뽀빠이란다


하얀색 뱃사람 모자를 쓰고 팔뚝에는 닻 모양을 문신으로 새긴 사나이 뽀빠이.

뱃사람 치고는 선량한 인상에 어딘지 모르게 친근감이 느껴진다.

그래서인지 날씬하고 가녀린 여인 올리버는 항상 그를 부른다.

그런데 시꺼먼 수염으로 온 얼굴이 뒤덮인 우락부락한 사내가 항상 올리버 주위를 맴돈다.

무섭도록 덩치가 큰 이 사내 부르터스는 심술궂은 아이처럼 올리버를 괴롭힌다.

참다 참다 견디지 못한 올리버는 외마디 비명을 지른다.


“도와줘요 뽀빠이!”


언제나 어디서나 이 소리가 들리면 아까 그 뱃사람 뽀빠이는 쏜살같이 달려간다.

그런데 자기가 상대해야 할 적수를 본 순간 이대로는 안 되겠다 싶은 마음이 드나 보다.

내가 보더라도 적수가 되지 못할 것 같다.

그런데 뽀빠이에게는 브루터스가 모르는 비밀 무기가 있다.

그것은 바로 시금치 한 캔.



시금치 캔을 따고 마치 음료수 마시듯이 벌컥벌컥 먹고 나면 뽀빠이의 알통은 갑자기 불끈불끈해진다.

그리고 그 뽀빠이의 한 방 주먹에 제 아무리 덩치가 큰 부르터스일지라도 그만 나가떨어진다.


이 만화를 보여주면서 엄마들은 야채 먹기를 싫어하는 아이들에게 시금치를 먹으면 뽀빠이처럼 힘이 세질 것이라고 뻥을 치셨다.

아이들은 엄마 말은 믿기지 않았지만 뽀빠이는 믿을 수 있어서 시금치 잔뜩 먹고 알통 자랑을 했다.

캬. 시금치 장사 한 번 기막히게 잘 했다.


정말 뽀빠이처럼 힘이 세졌는지 시험한답시고 평상시에 자기를 괴롭히던 녀석을 부르터스라고 여기고 덤벼들었다가 도리어 한 대 맞을 걸 보너스로 두 대 더 맞았던 아이들도 많다.

그제야 아이들은 만화영화의 세상과 현실 세상이 다르다는 것을 알게 되었다.



허무맹랑한 이야기인 것을 뻔히 알면서도 뽀빠이를 응원하였던 것은 나에게도 뽀빠이 같은 사람이 있었으면 좋겠다는 마음 때문이었다.

친구와 놀다가 다퉜는데 그 녀석이 자기 형을 데리고 왔다. 그러면서 하는 말이 “너도 형 있으면 데려와 봐.”

그 말을 듣고서 ‘왜 나에게는 형이 없을까?’하는 설움을 느낀 적이 있었다.


나는 일찍 아버지가 돌아가셨는데 살다 보니까 ‘이럴 때 아버지가 계셨으면 얼마나 좋았을까?’하는 순간들이 참 많았다.

혼자서는 살아갈 수 없는 세상인데 나를 도와줄 누군가 있으면 얼마나 좋을까? 위급한 상황에서 내가 도와달라고 외치기만 하면 언제든지 쏜살같이 달려와서 나를 도와줄 뽀빠이 같이 듬직한 사람이 있으면 좋겠다는 생각을 많이 했다.

뽀빠이가 없으니까 억울해도 어쩔 수 없이 내가 알아서 처리해야 했다.



그런데 언제부터인가 내가 뽀빠이가 된 것 같은 기분이 든다.

다급하게 식구들이 나를 부를 때가 있다.


“남편! 컴퓨터가 이상해. 전깃불이 안 켜져. 변기가 막혔어. 자동차에 문제가 있나 봐.”

“아빠. 내 방에 벌레가 나왔어. 좀 잡아줘. 장난감이 안 움직여.”


어쩔 수 없이 내가 출동해야 한다.

짜자잔!

등장해서 보면 대단한 일도 아니다.


컴퓨터 껐다 켜보고 몇 가지 정리하고, 두꺼비집 확인하고 형광등 바꿔주고. 뚫어펑으로 펌프질 하고. 자동차 이상한 부분 대충 살펴보고, 두루마리 휴지 좀 찢어서 날아 들어온 나방 한 마리 잡아주면 끝이다.


그런데 식구들은 그럴 때마다 박수를 치며 좋아한다.

“아빠 없으면 어떻게 살아?”

그 말을 들으면 어깨가 으쓱해진다.

그래, 나는 뽀빠이인가 보다.

식구들이 부르면 언제나 달려와서 깔끔하게 문제를 해결하는 우리 집의 뽀빠이.

그래, 아빠는 우리 집의 뽀빠이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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