베르디의 오페라 라 트라비아타(La Traviata, 길을 잘못 들어선 여자)를 보면 사람을 함부로 평가해서는 안 된다는 교훈을 짙게 얻을 수 있다. 여주인공 비올레타는 파리의 상류층들이 모이는 사교계에서 단연 돋보이는 여성이다. 하지만 그녀는 지금껏 여러 남성들을 사귀면서 온갖 상처만 받아왔다. 그녀에게 남자는 세상에 가장 믿을 수 없는 존재였다. 그러면서도 그녀는 진정한 사랑을 찾고 있었다.
어느 날 비올레타의 집에서 파티가 있었는데 그 자리에서 귀족 청년 알프레도가 ‘축배의 노래’를 부르며 사랑을 고백한다. 1년 전부터 짝사랑해왔다는 고백과 함께 말이다. 비올레타는 처음에는 알프레도를 거부하지만 그의 본심을 알고서는 사랑을 받아들인다. 그리고 파리의 사교계를 떠나 교외의 조용한 곳에 둘만의 보금자리를 만든다.
그러나 알프레도의 아버지는 비올레타를 가족으로 받아들이지 않는다. 오히려 딸의 결혼을 앞두고 있으니 집안의 체면을 위해서 알프레도를 떠나달라고 부탁한다.
사랑하지만 사랑하는 사람을 위해서 비올레타는 알프레도를 떠나기로 했다. 비올레타가 떠나버리자 알프레도는 큰 충격을 받고 사랑이 증오로 변한다.
시간이 지나 알프레도는 아버지의 편지를 받고서 비올레타가 자신을 떠날 수밖에 없었던 사실을 알게 되었다. 알프레도는 아버지에게 비올레타와 자신은 진실한 사랑을 나누고 있었으며 비올레타가 너무나 많은 희생을 하였다고 전하였다. 그리고 백방으로 수소문하여 비올레타가 머물고 있는 곳으로 찾아온다.
다시 만난 두 사람은 뜨거운 사랑을 고백하지만 비올레타는 심한 질병으로 알프레도의 품에 안겨 숨을 거둔다.
순박한 청년 알프레도는 파리 사교계에 어울리지 않는다. 어떻게 1년 넘도록 고백하지도 못한 채 짝사랑만 할 수 있을까? 그리고 아무리 어여쁜 여성일지라도 자신의 집안과 체면이 있는데 사교계의 여성을 사랑할 수 있을까?
비올레타는 사교계의 여성이면서 어떻게 순수한 사랑을 꿈꿀 수 있었을까? 알프레도를 만난 후에는 오로지 사랑을 위해서 자신의 지위와 재산을 다 떨쳐버렸는데 어떻게 그렇게 할 수 있었을까? 정말 알다가도 모를 일이다.
또 알프레도의 아버지는 어떤가? 비올레타를 만난 후 정숙한 여인임을 분명히 알았음에도 어떻게 제발 아들에게서 떠나달라고 말할 수 있었을까? 물론 딸의 결혼을 앞둔 상태에서 며느리인 비올레타의 신분이 적잖이 부담이 될 수 있었을 것이다. 그래도 그렇지! 아니다. 생각해 보니 그럴 수도 있겠다.
다 사연이 있다. 짝사랑에도 사연이 있고, 이 남자 저 남자 사귀어본 것에도 사연이 있다. 사랑 때문에 모든 것을 다 버리고 시골 자그마한 집으로 이사 갈 수도 있다.
나도 한창 사랑이 불붙었을 때는 단칸방에서라도 함께 살면서 사랑을 나눌 수 있으면 얼마나 좋을까 소원하였던 적이 있었다.
시집가는 딸의 앞날을 위해서 집안의 체면을 세워야 하는 아버지로서는 방탕하게 보일 수 있는 아들을 단도리하는 것도 필요할 것이다. 그래서 미안하지만 아직 정식 혼례를 치르지 않았으니까 비올레타에게 떠나달라고 할 수도 있을 것이다. 우리도 그런 일은 얼마든지 찾아볼 수 있다. 사람 사는 세상에 이렇게 사연들이 많다.
이 여러 사연들 중에서 딱히 하나 꼬집어서 나쁘다고 할 수도 없다. 어쩌면 이 모든 사연들이 한 잔에 모아졌기에 기막힌 축배가 되는 것이다. 그래서 슬픈 오페라인데도 ‘축배의 노래’가 남는 것이리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