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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박은석 Oct 23. 2020

나의 태풍을 견뎌내야 한다


고등학생 때까지 섬에서 살았다.

지금이야 뭍에서의 생활에 익숙해져 있지만 섬에서 살 때에는 늘 일기예보에 귀를 기울였다.

비 소식 눈 소식도 중요했지만 그에 못지않게 바람이 얼마나 센지에 관심을 가질 수밖에 없었다.

특히나 해마다 몇 차례씩 불어 닥치는 태풍은 섬사람들에게는 엄청난 긴장감을 자아내게 한다.


거대한 파도가 방파제를 넘어오고, 마을을 지키던 느티나무를 뽑아버리고, 지붕을 날려버리기도 한다.

태풍이 지나고 나면 마을은 그야말로 쑥대밭이 되기 일쑤이다.

땅에서는 엄청난 피해가 발생했는데도 태풍이 지난 바다는 잔잔해 보였다.

나는 바닷속 물고기들은 태풍의 영향을 별로 받지 않는 줄 알았다.

그래서 거센 파도도 한낱 물일 뿐이라고 떠들어대기도 했다. 그런데 그게 아니었다.



미국 마이애미대학교에서 직접 연구 조사를 했다.

태풍이 불 때 바닷속의 물고기들은 어떻게 지내는지 알고 싶었던 것이다.


바닷속 생물들은 해류의 흐름이 변하고 물속 기압이 변하면 뭔가 큰일이 있을 것을 미리 예상한다.

그래서 상어처럼 빠른 속도록 헤엄치는 물고기들은 멀리까지 도망친다고 한다. 태풍의 영향권을 벗어나려고 엄청나게 빨리 움직인다는 것이다.


하지만 일정한 영역을 정해놓고 그 안에서 느릿느릿하게 살아가는 어패류들은 어마어마한 희생을 치르게 된다고 한다.

거북이나 소라, 게, 굴과 같은 생물들이 그렇다.


더군다나 태풍은 엄청난 양의 비를 뿌리고 해류들을 뒤섞어버리기 때문에 바닷물의 염분과 산소의 농도가 낮아지게 되다.

그러면 어패류들이 살아가기에 너무 어려운 환경이 되고 만다. 치명적이다.



이런 사실을 몰랐을 때는 그저 바닷속에서 사는 것들은 좋겠다고만 생각했다.

바다 위로는 폭우가 쏟아지고 거센 바람이 휘몰아치지만 물 밑 깊숙한 곳에는 비도 없고 바람도 없으니 얼마나 좋을까 생각했다.

나를 두렵게 하는 비바람을 그들은 겪지 않으니 정말 좋을 것 같았다.

하지만 나의 무지였다.


그것들은 비록 내가 겪는 두려움과 똑같은 두려움을 겪지는 않지만 그들 나름대로의 두려움을 겪고 있었다.

설령 일찌감치 멀리 도망가는 상어 같은 종류도 마찬가지다. 살아남기 위해서 필사적으로 헤엄친다.

그 넓은 태풍의 영향권을 벗어나려고 하다 보니 이전에 자기들이 구축해놓았던 삶의 터전들을 다 버리고 몸만이라도 빠져나가야 했다.


태풍은 아무도 봐주지 않는다.

너나 나나 피해 가지 않는다.



내 인생에는 유독 심한 태풍이 몰아치는데 다른 사람은 바람 한 점 없이 맑은 날을 보내는 것 같은 기분이 들 때가 있었다.

기분이 되게 안 좋았다.

억울하기도 하였고 세상이 참 불평등하게 보이기도 했다.

나도 바닷속 물고기였다면, 나도 상어 같은 빠른 물고기라면 이런 고생은 하지 않을 텐데 하면서 신세 한탄도 많이 했다.


하지만 이제 조금은 알았다.

나는 나의 태풍을 겪는 것이고 그것들은 또한 자기들의 태풍을 겪는 것이었다.


누구에게 바람이 더 세게 불었다고 비교할 수도 없다.

살짝 손을 스치는 듯한 바람에도 누워버리는 갈대 같은 것도 있고, 담장을 넘어뜨리는 강한 바람에 온 몸으로 저항하다가 꺾는 나무도 있다.


누구에게나 태풍은 힘에 겹다.

하지만 제아무리 심한 태풍도  견디다 보면 곧 지나간다.


태풍이 지나간 하늘은 다시 파랗고 바다는 잔잔해진다.

그때까지 살아남아야 한다.

어떻게 해서든지 나의 태풍을 견뎌내야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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