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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박은석 Oct 24. 2020

나이테는 내가 살아온 영광의 흔적이다

    

나무줄기에는 형성층이라고 하는 조직이 있어서 봄과 여름에 활발한 세포분열을 함으로써 나무를 성장시킨다.

나무가 성장할 때는 형성층의 세포들이 수분을 많이 함유하고 있어서 세포의 부피가 크며 세포벽은 얇고 연한 색깔을 띤다.

그러다가 가을이 되면 세포 안에 있는 수분을 밖으로 배출한다. 겨우살이 준비를 하는 것이다.

수분이 많으면 추운 계절에는 얼어버리기 때문에 나무는 최대한 많은 양의 수분을 내보내고 바짝 마른 상태를 유지한다.

이때는 형성층의 세포 부피가 작아지고 세포벽은 두꺼워지며 짙은 색깔을 띤다.

그렇게 겨울을 지나서 다음 해 봄이 되면 다시 두껍고 짙은 조직 밖으로 얇고 연한 조직이 새롭게 만들어진다.

그러면 자연스럽게 두 개의 연한 조직 사이에 지난가을에 생긴 짙은 조직이 들어가 있는 꼴이 되면서 하나의 띠가 그어지는 것이다.

이것이 나이테이다.     




나이테는 해마다 가을에 한 줄씩 생기기 때문에 나무의 나이를 가늠할 수 있는 귀중한 자료가 된다.

그런데 모든 나무마다 나이테가 있는 것은 아니다.

열대지방의 나무들에서는 나이테를 찾아보기 힘들다.

나이테는 나무가 환경의 변화에 대처하면서 형성층을 확장시키고 수축시키는 가운데 그어지는 것인데, 열대지방에서는 언제나 똑같은 환경이 지속되기 때문에 형성층의 변화가 나타나지 않는 것이다. 그래서 나이테를 보기 힘들다.

우리나라처럼 계절의 변화가 뚜렷한 지역에서라야 나이테를 제대로 볼 수 있다.

그러니까 무조건 시간이 흘러간다고 해서 나이테가 생겨나는 것이 아니다.

세포 하나하나가 혹독한 환경을 견디기 위해서 자신을 수축시키고 확장시키는 안간힘을 쓸 때에야 비로소 한 줄의 나이테가 만들어지는 것이다.     




우리의 몸에도 나이테가 그어져 있다.

이마에 깊게 패인 주름살이 그렇고 누가와 목의 잔주름이 그렇다. 굵어진 손발가락의 마디마디가 그렇고 목소리의 걸걸함이 짙어진 것도 그렇다. 머리카락 색깔이 은색으로 변하는 것이 그렇고 휘어진 허리가 그렇다.

이 모든 것들은 우리가 치열하게 인생의 풍파를 견뎌왔음을 알려주는 증거이다.

주름살이 하나 그어진 것은 여름의 뙤약볕을 지내고 비바람에 맞섰으며 겨울의 차디 찬 서리와 눈보라를 견디었기에 생겨난 것이다.

그 한 줄의 선 속에는 기쁘고 좋았던 때의 웃음과 슬프고 힘들었던 때의 눈물이 녹아 있다.

그런 기쁨과 슬픔의 시간이 지나서 우리는 이만큼 성장하고 성숙하게 되었다.

겉으로는 우리의 몸이 커졌고 안으로는 우리의 마음이 넓어졌다.     




외적이든 내적이든 성장하려면 성장통을 겪을 수밖에 없다.

갑자기 키가 커진 아이들의 다리를 보면 살이 찢겨나간 성장통의 흔적을 역력히 볼 수 있다.

내적으로 성숙한 사람을 가까이 대해 보면 그가 겪었던 수많은 고통의 시간들을 찾아볼 수 있다.

그것들이 한 줄씩 쌓이면서 그의 인생 나이테가 된 것이다.

우리에게 주어진 환경들이 싫다고 떠날 수는 없다.

나이테가 싫다고 해서 소나무를 열대지방에 옮겨다 심으면 곧 죽는다. 떠나면 죽는다.

살아가려면 환경에 적응하고 그 환경을 극복해야 한다.

자기가 좋아하는 계절만을 꿈꾸지 말라.

우리는 인생의 봄여름가을겨울을 살아야 한다.

그렇게 혹독한 계절을 지나면 우리에게 한 줄의 나이테가 그어질 것이다.

그 나이테는 우리가 치열하게 살았다고 하는 영광의 흔적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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