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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박은석 Nov 17. 2023

그게 나의 문제라면


인도네시아서 잠깐 지낼 때였다.

집에 가사 식모가 한 명 있었고 운전사가 한 명 있었다.

내가 돈이 많아서 그들을 둔 것이 아니다.

외국인으로서 인도네시아에서 살려면 적어도 2명에게는 일자리를 만들어 주어야 한다.

법으로 정한 것은 아니었지만 그렇게 하는 게 서로 돕는 방식이었다.

식모 일자리는 주로 시골에서 자카르타에 올라온 이십 대 아가씨들이 맡았다.

그이들은 하루 스물네 시간 우리와 함께 지냈다.

주방 옆에 식모가 머물 자그마한 방이 마련되어 있었다.

집을 지을 때 아예 그렇게 설계하고 짓는다.

식모는 한 달에 하루 휴가를 갔다.

그러나 딱히 갈 데가 없는 경우에는 휴가도 반납했다.

월급은 7만 원 정도였다.

운전사는 아침에 출근해서 저녁까지 자동차 곁에 있었다.

출퇴근할 때나 마트에 장을 보러 갈 때 외에도 주인집 식구들이 집 밖으로 나갈 때는 언제나 운전사를 불렀다.

그들의 월급은 15만 원 정도였다.




집에 적어도 2명의 일꾼을 두고 살아가니까 대단해 보이지만 실제로는 그렇지 않다.

우리가 인도네시아 말을 잘 모르니까 식모가 우리 대신 집안의 일을 해 주는 것이다.

세금도 내고 외부인이 오면 대응해 주기도 하면서 우리를 보호해 주었던 것이다.

우리가 인도네시아의 길을 잘 모르니까 운전사가 우리 대신 길을 안내해 준 것이었다.

가벼운 접촉사고라도 나는 날이면 외국인은 덤터기 쓸 수밖에 없다.

그런 때 운전사가 있으면 아무렇지도 않게 일을 처리할 수 있었다.

그러니까 그들 덕분에 우리가 편하게 지낼 수 있었고 우리 덕분에 그들이 일자리를 얻어 지낼 수 있었다.

물론 식모가 우리 물건에 손을 대는 적도 있었다.

운전사가 나 몰래 자동차 스페어타이어를 팔아먹은 적도 있었다.

그들 때문에 손해 본 적도 있지만 그들 때문에 이득을 얻은 적이 훨씬 많다.

내가 3년 동안 큰 탈 없이 지낼 수 있었던 것은 그들 덕분이다.     




인도네시아는 인구도 많고 자원도 많은데 가난한 나라이다.

도무지 그 사람들이 가난할 이유가 없을 것 같은데 가난했다.

왜 그런가 살펴봤더니 우리나라를 비롯한 선진국들이 인도네시아에서 돈을 많이 벌고 있었기 때문이었다.

값싼 노동력으로 물건을 만들어 내고 그것을 비싼 가격에 팔았다.

값싸게 쌀을 사고 석유와 가스를 사서 값비싸게 팔았다.

그런 식이었다.

인도네시아 사람들이 나름대로 노력을 해서 경제성장을 하려면 힘센 나라들이 여러 가지로 방해를 했다.

외환위기 같은 일들이 주기적으로 반복되는 것 같았다.

정치와 경제에 문외한인 나의 눈에도 그게 보였다.

그대 내가 깨달은 게 있다.

우리가 잘 살려면 인도네시아 같은 나라가 못 살아야 한다는 사실을 말이다.

우도 잘 살고 인도네시아 사람들도 잘 사는 일은 찾아보기 힘들었다.

인도네시아 사람들을 생각하고 그들을 위해서 사는 외국인은 거의 없었다.




그들도 행복하고 우리도 행복한 방법은 없을까? 없는 것 같다.

한정된 자원을 가지고 살아가는데 내가 많이 가져가면 남들은 나보다 적게 가지게 된다.

그러면 나를 보면서 자신들은 불행하다고 생각하게 될 것이다.

모두가 공평하게 행복을 나누어 갖는 것은 공산주의에서도 불가능했다.

그래서 영국의 철학자였던 제레미 밴덤은 최대다수의 최대행복을 주창했다.

모든 사람이 행복한 세상은 애초에 포기한 것이다.

대신 불행하다고 생각하는 사람보다 행복하다고 생각하는 사람이 더 많으면 된다는 것이다.

그렇다면 과연 다수의 행복을 위해서 소수의 불행은 무시할 수 있는가? 그럴 수도 있다고 생각 드는 순간 그 소수가 바로 내 가족이라면 어떡할 것인가? 그러면 행복한 다수보다 불행한 소수가 더 크게 보일 것이다.

그게 나의 문제라면 그렇다.

오늘도 잊지 말자.

소수의 목소리를.

그 목소리가 나의 목소리일 수도 있다는 사실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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