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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박은석 Nov 19. 2023

트렌드 때문에 세상이 망가진 것 같다


일 년 열두 달 중에서 11월은 한 해를 정리하는 매우 중요한 달이다.

한 해를 정리하는 시간은 12월이어야 하지 않느냐고 물을 수 있지만 12월은 정리에 방점을 두기보다 새로운 해를 준비하는 시간이라는 데 방점을 두게 된다.

11월에 정리를 하고 12월에 준비를 해서 1월에 새롭게 출발하는 것이다.

회사의 조직들도 11월에 정리를 한다.

새로운 사람이 누구인지, 진급할 사람은 누구인지, 그리고 내보낼 사람은 또 누구인지 정리를 한다.

대학입학시험을 11월에 실시하는 것도 나름대로의 이유가 있을 것이다.

12월에 시험을 치렀던 적도 있다.

그런데 12월에 시험을 치르는 것보다 11월에 시험을 치르는 게 더 나았기 때문에 11월로 옮겼을 것이다.

고등학교 3학년인 딸아이의 기말고사도 11월에 치른다.

고등학교 마지막 시험이다.

초등학교 때부터 고등학교 3학년까지의 공교육을 마무리하는 시험이다.

그것도 11월에 있다.




이번 주에는 시간을 내서 은행잎 빛깔이 좋다는 데를 찾아갔었다.

아뿔싸! 비 한 번 와서 그런지 은행나무 가지에 붙어 있을 줄 알았던 노란 은행잎들은 이미 다 떨어져 땅바닥을 굴러다니고 있었다.

단풍구경도 은행나뭇잎 구경도 10월에 가야 한다.

11월이 되면 나무들도 정리한다.

이파리들을 다 떨구고 겨울을 준비한다.

그걸 생각하지 못했다.

아직은 11월 중순이니까 나를 위해서 은행잎 얼마는 남겨두었으리라 생각했었다.

완전한 나의 착각이었다.

나무들은 나를 기다리지 않았다.

정리할 시간인 11월이 되자 나무들은 일제히 이파리들을 떨구었다.

나처럼 차일피일 미루지 않았다.

텅 빈 나뭇가지들만 바라보다가 왔다.

노란 단풍잎을 상상하면서 갔지만 을씨년스러운 늦가을 분위기만 채우고 왔다.

다음에는 절대로 단풍 구경을 늦추지 않으리라 마음먹었다.

11월은 나무들도 한 해를 정리하는 시간이라는 걸 뼈저리게 느꼈다.




11월이면 서울대학교 김난도 교수와 그의 연구팀에서 책을 한 권 낸다.

오래전부터 나도 이 책에 관심을 가지고 있다.

한 해를 정리하고 또 한 해를 바라보면서 내년에는 이렇게 준비하라고 조언을 주는 책이다.

‘트렌드 코리아’라는 제목으로 해마다 나오고 있다.

올해는 <트렌드 코리아 2024>이다.

내년에 대한민국의 소비 성향은 어떨지 미리 예측해 보는 책이다.

12지간의 동물을 참조하여 해마다 그 동물에 어울리는 성향 10가지 정도를 꼽아낸다.

그 키워드로 한 해의 소비 성향을 예측한다.

어디까지나 예측이다.

이 책에 기록된 대로 세상이 돌아간다고 볼 수는 없다.

하지만 상당히 일리 있는 견해임은 분명하다.

그래서 나도 오래전부터 11월이 되면 이 책을 보고 있다.

기업인도 아니고 장사꾼도 아니지만 대한민국 사회가 어떻게 돌아가고 있는지 예측해 보는 것은 나에게도 중요한 일이기 때문에 이 책을 보고 있다.




그런데 이 책을 읽으면 긍정적인 생각보다 부정적인 생각이 더 많이 든다.

가면 갈수록 기계문명이 우리 사회를 잠식할 것이라고 얘기한다.

소비트렌드를 예측하는 책이어서 그런지 돈의 흐름에 관심이 많다.

그 사이에서 인간성은 사라져가는 기분이 든다.

이번 책에서도 그런 느낌을 받았다.

바쁘게 사는 분초사회, 인공지능(AI)이 활개치는 사회, 꽃미남과 꽃미녀를 꿈꾸는 사회, 즐거움을 추구하는 사회, 전통적인 가치관이 무너지는 사회, 과소비와 유행을 좇는 사회, 그렇게 흘러가느라 인간성이 사라지는 사회.

화려한 세상 속에서 외로움이 병이 되는 사회.

책을 읽으면서 ‘그래, 그래, 그럴 거야.’라며 공감을 한다.

씁쓸하지만 이 책의 예측들을 받아들이려고 한다.

그런데 내 마음속에는 무엇인지 말로 표현할 수 없는 불편함이 있다.

내가 살아가는 세상이 어떤 것 때문에 망가져버린 것 같다.

그게 트렌드가 아닌가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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