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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박은석 Oct 18. 2023

좋은 스피커가 있어도 내 맘껏 들을 수가 없다

집에 이어폰이 몇 개 있다.

나는 막귀라서 아무 이어폰이나 꽂아도 괜찮다고 생각하며 살았다.

그런데 몇 년 전에 좀 소문난 이어폰을 착용해 봤다.

그때 처음 알았다.

세상에 막귀인 사람은 없었다.

좋은 소리를 듣지 못했을 뿐이다.

이어폰값이 왜 이렇게 비싼가 했는데 좋은 이어폰을 착용해 보니 그 사정을 알 것 수 있었다.

컴퓨터에 저장된 음악들, 휴대폰에 저장된 음악들을 스피커를 통해서 듣는 것도 괜찮았다.

하지만 좋은 이어폰으로 들었을 때 들리는 소리가 달랐다.

이어폰을 오랫동안 사용하다 보니까 귀가 상할 것 같은 생각이 들었다.

그래서 이번에는 헤드셋을 구입했다.

오! 이것도 또 다른 세계로 나를 인도했다.

귀를 다 덮은 상태에서 울리는 소리는 이어폰과는 또 달랐다.

그래서 이제는 기분에 따라서 이어폰을 착용하기도 하고 헤드셋을 사용하기도 한다.

점점 더 소리에 민감해지고 있는 나 자신을 발견하고 있다.




가끔은 귀에서 이어폰을 빼고 헤드셋을 벗고 좋은 스피커로 빵빵하게 터져 나오는 소리를 듣고 싶은 마음이 든다.

저렴한 탁상용 스피커 말고 울림이 좋은 스피커를 설치하고 싶다.

사실 꽤 괜찮은 스피커가 있기는 하다.

하지만 도저히 연결할 엄두가 나지 않는다.

괜히 자리만 차지할 것 같은 생각이 들기 때문이다.

그래서 좀 괜찮다고 하는 블루투스 스피커를 구입했다.

이것도 또 새로운 세계로 나를 인도했다.

요즘의 기술이 얼마나 대단한지 크기가 작아도 좋은 소리를 내는 스피커들이 엄청 많다는 걸 알 수 있었다.

그런데 스피커가 좋아도 그 스피커를 제대로 사용하지 못한다.

왜냐하면 소리를 크게 하면 다른 사람에게 방해가 되기 때문이다.

한밤중에 소리를 좀 크게 해서 음악을 들으려고 하면 위아랫집에서 난리가 날 거라고 한다.

특히 아랫집은 우리 애들이 어렸을 때 발자국 소리가 크게 들린다며 여러 번 올라왔었다.




내 집에서 내가 걸어 다니는 것을 조심해야 하고 내 집에서 내가 듣고 싶은 소리를 듣는 것도 조심해야 한다.

내 집이란 공간은 내가 마음껏 지낼 수 있는 나의 자유 공간인데 나는 나의 자유를 제대로 누리지 못하고 있다.

사람은 누구나 자유를 누릴 권리가 있다.

그런데 내 자유가 다른 사람들 때문에 침해를 받는다.

굉장히 억울한 일이다.

그런데 만약 내가 나의 자유를 고집하면 이웃들이 억울할 것이다.

자기들은 조용히 지내고 싶은데 시끄러운 음악소리가 들리니까 조용히 지내고 싶은 자신들의 자유가 침해를 받는다고 생각할 것이다.

도대체 누구의 자유를 지켜주어야 하고 누구의 자유를 희생해야 할까?

쉽지 않은 문제이다.

만약 서로가 자신의 자유만을 고집한다면 결과는 뻔하다.

나와 이웃 간에 싸움만 날 뿐이다.

윗집과도 싸우게 될 테고 아랫집과도 싸우게 될 것이다.

뿐만 아니라 옆집과도 대판 싸우게 될 것이다.




이런 현실을 토마스 홉스가 잘 간파하였다.

<리바이어던>이란 책에서 그는 인간에게는 누구나 자유가 있는데 이 자유가 서로 충돌을 일으키니까 모든 사람이 싸움박질하게 되었다고 했다.

만인이 만인과 싸우는 꼴이다.

너무나 무서운 세상이 되고 말았다.

급기야 평화롭게 살고 싶은 사람들이 목소리를 냈다.

서로의 자유를 좀 줄이면 안 싸우게 될 거라고 했다.

서로 약속을 했다.

사회적인 계약을 맺은 것이다.

그리고 이 약속을 잘 지킬 수 있도록 관리 감독할 수 있는 기구도 만들었다.

왕이나 국가 같은 권력 기구가 생겼다.

이제는 정말 평화롭게 살 수 있을 것 같았다.

그런데 이게 웬걸?

그 왕과 국가가 어느 순간 무서운 독재자가 되고 말았다.

이제는 나에게 자유를 달라고 말도 못 꺼내게 되었다.

왕의 눈치를 보고 국가의 눈치를 보며 살 수밖에 없게 되었다.

좋은 스피커가 있어도 달지 못하는 내 처지가 꼭 이와 같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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