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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박은석 Dec 08. 2023

내가 내디딘 한 걸음 덕분에...


중세시대 때까지만 하더라도 유럽인들은 지구가 평평하다고 믿었다.

바닷가에서 서서 수평선을 보면 일직선으로 보이는데 그 수평선이 끝나는 지점에 다다르면 깊은 낭떠러지가 있다고 생각했다.

바로 그곳이 지옥으로 떨어지는 곳이라고 믿었다.

당시 사람들의 생각을 뒷받침해주는 증거도 있었다.

유럽 대륙의 서쪽 끝에 위치한 포르투갈에서 배를 타고 수평선 쪽으로 가면 바닷물이 점점 뜨거워졌다.

선원들은 물이 뜨거워지는 이유는 저 앞쪽에서 불이 타오르고 있기 때문이라고 생각했다.

그렇다면 저 앞쪽에는 무시무시한 유황불이 타오르는 지옥이 있을 것이라고 생각했다.

수평선을 향해서 가면 물살도 거세졌는데 그것은 지옥문을 지키는 무시무시한 괴물이 바닷물을 휘젓고 있기 때문이라고 생각했다.

그 시대의 사람들은 배를 타고 나갔다가 수평선 끝 낭떠러지에 다다르면 괴물에게 잡혀서 돌아오지 못할 것이라고 했다.




포르투갈의 엔리케 왕자가 적극적으로 지원을 하면서 남쪽에 뭐가 있는지 탐험해 보라고 했다.

당시의 세계 무역의 중심지는 지중해였다.

아랍 상인들이 중국과 인도에서 차와 향신료를 구입해서 지중해변에 있는 베네치아 같은 데서 팔았다.

그러다 보니까 상대적으로 지중해에서 멀리 떨어져 있는 포르투갈의 경제력은 다른 나라에 비해서 상당히 낮을 수밖에 없었다.

엔리케 왕자는 혹시 바닷길이 새로운 길이 되지 않을까 하는 막연한 생각을 했다.

그러려면 바닷길을 알아야 했다.

그래서 거금을 들여서 바다 탐험대를 모집했다.

하지만 선원들은 탐험을 꺼렸다.

아직 한 번도 가 본 적이 없는 남쪽 바다로 갔다가 목숨을 잃으면 어떡하냐는 게 선원들의 생각이었다.

엔리케 왕자는 선원들을 어르기도 하고 엄하게 꾸짖기도 하면서 항해를 감행하게 했다.

하지만 14번이나 계속되는 항해에서 탐험대는 실패, 실패, 실패만 거듭했다.




그러나 엔리케 왕자는 포기하지 않았다.

1415년에 첫 탐험대를 출발시킨 후에 계속 실패해지만 “다시! 다시! 다시!”를 외치며 독려했다.

드디어 근 20년 후에 1434년에 질 이아네스 선장이 ‘어둠의 바다’ 입구라고 불리던 보자도르곶(Cape Bojador)을 돌파하였다.

사람들은 두렵다고 피했는데 질 이아네스는 그 두려움을 정복하려고 하였다.

두려움을 정복한 순간 지금까지 믿고 있었던 것이 헛된 미신이었다는 사실을 알게 되었다.

괜한 소문이 두려움을 불러일으켰고 그 두려움이 신앙처럼 굳어버린 것이었다.

바다 끝에 낭떠러지 같은 것은 없으며 남쪽으로 갈수록 바닷물이 뜨거워지는 것은 태양빛이 강하기 때문이란 사실도 알게 되었다.

엔리케 왕자와 질 이아네스 선장 덕분에 포르투갈 인들은 바닷길이 새로운 길이 될 수 있다는 확신을 갖게 되었다.

그 뒤를 이어 바르톨로뮤 디아스와 바스쿠 다 가마 같은 위인들이 나온 것이다.




우리는 희망봉을 발견한 바르톨로뮤 디아스와 희망봉을 돌아서 인도까지 가는 길을 발견한 바스쿠 다 가마를 대단한 인물로 추앙한다.

그러나 그 이전에 질 이아네스가 없었다면 바르톨로뮤 디아스나 바스쿠 다 가마도 힘들었을 것이다.

엔리케 왕자가 없었다면 질 이에네스도 탐험대를 이끌고 배를 몰고 가지는 않았을 것이다.

처음에는 아주 작은 생각에서 비롯되었다.

그 생각이 몸을 움직여 한 걸음을 걷게 했고 그렇게 한 걸음, 한 걸음이 쌓여서 큰 길이 만들어진 것이다.

달에 발자국을 남긴 첫 지구인은 아폴로 11호를 타고 떠난 닐 암스트롱이다.

발자국이 뭐 대단하냐고 하겠지만 암스트롱의 생각은 달랐다.


“누군가에게는 작은 한 걸음이지만 인류에게는 위대한 도약이다.”


두려움 앞에 서 있다고 해서 움츠리고만 있지는 말자.

용기를 내서 한 걸음 내디뎌 보자.

내 한 걸음을 이어서 누군가는 두 걸음을 갈 수 있을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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