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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박은석 Dec 03. 2023

사람은 사람으로 인해서 산다


백운호수 근처에 있는 식당에 갔었다.

몇 년 전에도 들렀던 식당이다.

음식이 맛도 있지만 정갈하게 나오는 집이다.

입구에 들어서는데 전에 없던 풍경이 펼쳐졌다.

가수 임영웅의 사진이 곳곳에 놓여 있었다.

요즘 60대 이상의 여성들 사이에서 최고 인기를 구가하고 있다고 하는데 식당 사장님도 임영웅을 좋아하나 보다 싶었다.

식사를 마치고 나오면서 인사차 “임영웅을 좋아하시나 봐요?”하고 여쭈었다.

그랬더니 사장님이 반색을 사연을 들려주었다.

몇 년 전에 남편을 잃었다고 했다.

사는 게 사는 것 같지가 않았고 깊은 우울증에 빠져들었다고 했다.

아침에 일어나면 눈물을 흘리는 것으로 하루를 시작했고 저녁에 누울 때도 눈물을 흘렸다고 한다.

잠이 오지 않아 수면제를 먹을 때는 이대로 아침에 눈을 뜨지 말았으면 좋겠다는 생각을 했다고 한다.

삶의 의욕을 완전히 상실했을 때 우연히 임영웅의 노래를 들었다고 했다.




누구에게나 그럴 때가 있다.

우연히 듣게 된 노래인데 그 노래가 내 마음에 들어올 때.

그 노래가 내 마음을 토닥일 때.

그 노래가 내 마음과 이야기해 줄 때.

그때 임영웅의 노래가 사장님에게 그렇게 다가왔다고 했다.

그날부터 임영웅의 노래를 하나씩 찾아서 들었다고 했다.

모든 노래가 다 자기 이야기처럼 들려졌다고 했다.

설마 그랬을까 싶은데 본인이 그랬다니까 믿을 수밖에 없었다.

아니, 이야기를 들으면서 나도 그렇게 믿어졌다.

어느 순간 ‘살아야겠다’는 마음이 들었다고 했다.

임영웅의 노래와 ‘살아야겠다’는 다짐이 무슨 상관이 있겠냐마는 누군가에게는 그런 마음이 생기나 보다.

하긴 프랑스 시인 폴 발레리는 부서지는 파도를 보면서 “바람이 분다.

살아야겠다.”라고 노래를 했다.

발레리처럼 어떤 사람은 바람만 불어도 삶의 소망이 느껴지는 것이다.

식당 사장님은 그때 임영웅의 노래가 자신을 살렸다고 했다.




이제는 매일의 습관이 하나 생겼다고 했다.

아침에 일어나면 임영웅의 노래를 듣는 것.

출근하면서 임영웅의 노래를 듣는 것.

틈틈이 쉬는 시간에 임영웅의 노래를 듣는 것.

퇴근하면서 임영웅의 노래를 듣는 것.

잠자기 전에 임영웅의 노래를 듣는 것.

자신에게 삶의 의지를 선사해 준 임영웅에게 고마운 마음을 표현하려고 식당 곳곳에 임영웅의 사진을 전시했다고 한다.

요즘은 장사도 잘되고 몸도 건강해졌고 모든 게 좋다고 한다.

사장님의 임영웅 자랑 이야기는 그치지 않을 것 같았다.

이런 분들이 있어서 그런지 임영웅 콘서트 입장권 구하기가 하늘의 별 따기처럼 어렵다고 한다.

나도 두 번 시도해 봤는데 실패했다.

저녁 8시에 티켓팅 오픈하길래 8시 정각에 클릭을 했다.

그런데 나보다 클릭 속도가 빠른 사람이 몇만 명이나 되었다.

이렇게 어려울 줄은 몰랐다.

엘지트윈스의 코리안시리즈 티켓을 구하는 것 못지않았다.




백운호수 식당 사장님의 이야기를 곱씹어 보았다.

사장님이 힘들었던 이유는 무엇이었나?

사람 때문이었다.

사랑하는 사람을 잃었기 때문이다.

사람이 떠나서 인생에 큰 구멍이 생겨버렸다.

그 구멍은 돈을 벌어도 메꿀 수가 없었다.

일을 열심히 해도 메꿀 수가 없었다.

그런데 우연히 그 구멍이 조금씩 메꿔졌다.

우연히 다가온 사람 때문이었다.

사장님에게는 그 사람이 임영웅이었다.

그래 봤자 텔레비전에서 본 것, 스마트폰에서 본 것이 전부였을 것 같다.

한 번이라도 직접 만나보기나 했는지 모르겠다.

직접 만나 보았든 텔레비전에서만 보았든 그게 무슨 상관이겠나?

사장님이 치유되고 회복되었다는데 그러면 된 것 아닌가?

사람이 아프게 되는 것도 사람 때문이고 사람이 낫게 되는 것도 사람 때문이다.

사람이 눈물을 흘리는 것도 사람 때문이고 사람이 웃음을 짓게 되는 것도 사람 때문이다.

사람은 사람으로 인해서 산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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