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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박은석 Dec 10. 2023

오늘을 견디면 오늘의 승자가 되는 것이다


마치 큰 강물이 도도히 흘러가듯이 한 인물과 그를 둘러싼 사람들의 이야기를 들려주는 소설을 대하소설(大河小說)이라고 한다.

강물의 중심을 어디라고 콕 집어서 말할 수 없듯이 대하소설의 주인공도 누구라고 콕 집어서 말할 수 없다.

할아버지가 주인공이었다가 그 바통을 이어서 아버지가 주인공이 되고, 후에는 '내'가 주인공이 된다.

할아버지가 사셨던 시대가 주 무대가 되었다가 아버지의 시대가 주 무대가 되고 그 뒤에 나의 시대가 주 무대가 된다.

대표적인 대하소설로는 박경리의 <토지>를 들 수 있다.

주인공은 최서희 같은데 소설의 앞부분에는 서희의 할머니가 주인공 같고, 서희의 아버지와 어머니가 주인공 같다.

소설의 중간을 넘어가면서는 서희와 김상길이 주인공 같고 후반부에 이르면 주인공이 서희의 아이들에게 넘어가는 것 같다.

그쯤 되면 우리는 안다.

주인공은 바로 우리 자신이라는 사실을.




대하소설에서는 한 가문이나 사회의 흥망성쇠를 고스란히 보여준다.

봄날에 어린아이들이 들판을 뛰노는 것처럼 생기발랄한 모습도 보여주고, 사춘기 시절의 고뇌도 보여주고, 청춘의 시련과 사랑도 보여준다.

인생의 성공과 업적을 보여주고 노년의 약함도 보여준다.

가문의 영광을 이야기하기 좋아하는 사람은 대하소설을 읽으면서 '우리 가문도 예전에는 명문 가문이었지'라고 이야기할 것이다.

가문에 큰 아픔이 있는 사람은 대하소설을 읽으면서 '우리 가문은 그때 끝난 줄 알았어.

그런데 조상들은 그때 어떻게 견뎠는지 몰라.'라고 이야기할 것이다.

이처럼 대하소설은 그 어떤 사람도 그 이야기에 빨려들게 만든다.

마치 나의 이야기 같고 우리 집안의 이야기 같고 우리 사회의 이야기 같기 때문이다.

먼 옛날의 나와는 멀리 떨어진 곳에서 살았던 사람들의 이야기가 아니고 바로 이곳에 있는 나의 집안과 나의 이야기 같다.




시오노 나나미의 <로마인 이야기>를 처음에는 역사책이라는 생각으로 읽었다.

로마의 역사를 세밀하게 소개해주고 있었기 때문이다.

그런데 작가인 시오노 나나미는 이 책이 로마 역사에 대한 책이 아니라고 강조했다.

로마인에 대한 이야기라고 했다.

사람에 대한 이야기라면 소설에 가까운데, 그런 생각을 가지고 보니까 재밌는 소설들이 수십 편 묶여 있는 것 같았다.

그것도 천 년 동안의 이야기를 이어가는 거대한 대하소설처럼 보였다.

늑대 소년 로물루스와 레무스가 주인공이었다가 카이사르가 스키피오와 한니발이 주인공이 되기도 하고, 율리우스 카이사르가 주인공이 되었다가 아우구스투스가 주인공이 되었다.

지혜로운 황제들이 등장하는가 하면 못된 짓만 골라가면서 행한 악한 황제들도 나온다.

전쟁에서 승리하여 개선가를 부른 군사들도 나오고 전장에서 처참하게 죽어간 군사들도 나온다.

그 가운데 ‘내’가 있었다. 




<토지>나 <로마인 이야기> 같은 긴 이야기를 읽다 보면 마음속에서 한 가지 생각이 점점 더 또렷해진다.

오늘을 잘 살아야겠다는 생각이다.

대 제국의 황제도, 용맹한 장수도 잠시 등장했다가 사라진다.

부잣집 마나님도 할머니가 되고 곱디고왔던 얼굴에도 주름이 가득한다.

손에 무엇인가 움켜쥔 것 같았다.

그것을 놓치지 않으려고 꼭 쥐었다.

하지만 손을 펴보니 아무것도 없었다.

물을 잡는 것 같았고 바람을 잡는 것 같았다.

잡히지도 않는 것을 잡으려고 했던 것 같다.

꽃은 피어도 십 일이고 권좌에 앉는 것도 십 년이라는 말이 빈말이 아닌 것 같다.

로마 제국도 사라지고 황제도 사라졌지만 로마인들은 살아 있다.

부잣집 마나님도 사라지고 고래등 같은 기와집도 사라졌지만 땅(土地)은 살아 있다.

역사의 승자는 살아남은 자라고 하는 말처럼 오늘을 살아가는 사람이 승자이다.

오늘을 견디면 오늘을 이기는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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