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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박은석 Dec 11. 2023

나에게 보이는 모습이 그 사람의 전부는 아니다


러시아 블라디보스토크 태생으로 2016년에 한국 국적을 취득한 벨랴코프 일리야란 사람이 있다.

‘비정상회담’이라는 JTBC 방송에서 러시아를 대표하는 패널로 출연하기도 해서 얼굴이 많이 알려졌다.

러시아에 있을 때 한국학을 공부했고 연세대학교 대학원에서 국어국문학을 공부했다.

2022년에 그가 <지극히 사적인 러시아>라는 책을 냈는데 러시아에 관심이 있는 사람이라면 한번 읽어볼 만하다.

러시아 사람임에도 불구하고 책 제목이 지극히 사적이라고 했다.

이 말에서 알 수 있듯이 그의 책은 러시아를 대변하는 책이 아니라 러시아에 대한 자신의 생각을 적은 책이다.

러시아 사람이라면 자신 있게 “러시아는 이런 나라야!”라고 말할 수 있을 것 같은데 그는 자신의 주장을 감추면서 글을 썼다.

“내가 생각하기에 러시아는 말야...” 이런 식이다.

러시아 사람도 러시아에 대해서 똑부러지게 얘기하지 못하는 것 같은 기분이 든다.




누가 나에게 대한민국에 대해서 얘기해 보라고 하면 나는 자신 있게 얘기할 수 있다.

대한민국은 이런 나라이고 대한민국 사람은 이런 특징이 있다고 할 것이다.

더 구체적으로 말한다면 대한민국은 강원도, 서울 경기도, 충청도, 경상도, 전라도, 제주도라는 크게 6개 지역이 있고 그 지역마다 말과 문화가 다르다고 할 것이다.

이 여섯 개의 지역 중에서도 내 고향이 제주도니까 제주도에 대해서는 더 자세히 설명할 수 있을 것이다.

그러면서 내가 제주도에 대해서는 제일 잘 아는 사람이라고 우쭐댈 것이다.

나뿐만 아니라 내 주변 사람들 대부분이 그런 것 같다.

자신이 경험한 것을 절대화시켜서 그게 전부인 양 이야기를 한다.

오래전 배낭여행 중에 일본 사람 한 명을 만난 적이 있다.

여러 날 동안 그와 여행 동선이 겹치면서 이런저런 이야기를 나누었다.

그 후로 나에게 “일본 사람은 말야...”라는 식으로 말하는 버릇이 생겼다.




그런데 <지극히 사적인 러시아>를 읽다 보면 벨랴코프 일리야는 그런 식으로 말하지 않는다.

자신은 러시아의 극동부에 있는 블라디보스토크에서 태어나서 자란 사람이라서 다른 지역에 대해서는 잘 모른다는 식이다.

흔히 러시아는 추운 나라라고 하는데 러시아의 어떤 직역은 겨울에도 대한민국보다 훨씬 따뜻하다고 한다.

그러니 러시아를 추운 나라라고 하는 말은 맞지 않는 말이다.

우리는 러시아가 북한과 친하다고 말을 하는데 그 말을 들은 일리야는 깜짝 놀랐다고 한다.

자신은 자라오면서 러시아가 북한과 특별히 친하다는 생각을 해본 적이 없다는 것이다.

그러면서 러시아는 한국 사람들이 생각하는 것처럼 독재 사회도 아니고 공산주의 나라도 아니라고 하였다.

물론 과거에 그런 경험이 있었다는 사실은 인정한다.

그러나 지금의 러시아는 과거의 러시아와는 다르다고 분명하게 이야기한다.

나에게는 엄청 큰 충격이었다.




우리는 자신의 귀로 들은 말과 자신의 눈으로 본 상황과 자신의 머리로 생각한 현상을 굳게 믿어버리는 경향이 있다.

그리고 한번 굳어진 그 믿음은 어지간해서는 변하지 않는다.

새로운 정보가 들어올 여지를 주지 않는다.

오늘도 그런 경험을 했다.

내 앞에서 두 사람이 열띤 논쟁을 하고 있었는데 그중의 한 분이 상대방을 향해서 ‘좌파’라고 했다.

아마 자신의 생각과 조금 달랐던 것 같다.

그런데 곧바로 선을 그어버렸다.

그 모습을 보면서 쓴웃음이 나왔다.

좌파와 우파를 나누는 기준이 뭘까 생각해 보았다.

도통 그 기준이 떠오르지 않았다.

한 사람에게는 여러 모습이 있다.

정면에서 보는 모습과 옆이나 뒤에서 보는 모습이 다르다.

위에서 보는 모습과 아래에서 보는 모습이 다르다.

나에게 보인 모습이 그 사람의 전부는 아니다.

섣불리 판단하지 말아야 하는 이유다.

그럼에도 나는 재빠르게 판단하려고 한다.

에휴! 이 사람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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