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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박은석 Dec 19. 2023

크리스마스 캐럴이 그립다


점심식사를 하려고 식당에 앉아 있었다.

무얼 먹을까 메뉴를 들춰보고 있었는데 식당 안에 잔잔한 음악소리가 들렸다.

크리스마스 캐럴이었다.

‘아 크리스마스 시즌이었지!’

교회에서 크리스마스트리도 보고 교회학교 아이들의 성탄발표회도 보았는데 하루 지나니까 다 잊어버렸다.

성탄절이 며칠 앞으로 다가오고 있는데 내 일상생활에서는 성탄절 느낌이 전혀 나지 않는다.

나뿐만 아니라 우리 동네 전체가 그런 느낌이다.

언제부터였을까? 아마 크리스마스 캐럴에 저작권 시비가 붙기 시작했을 때부터였던 것 같다.

그 이전에는 12월이 되자마자 가게마다 커다란 스피커를 통해서 크리스마스 캐럴이 울려 퍼졌다.

캐럴을 들으면 기분이 좋아지고 소리가 울리는 곳으로 눈이 간다.

자연스럽게 발걸음이 가게 안으로 들어간다.

진열된 물건을 보면 갖고 싶기도 하고 누군가에 선물해 주고 싶기도 한다.

결국 무언가 사 들고 나온다.




나에게든지 다른 이에게든지 무언가 선물을 할 수 있다는 마음은 설렘에 준다.

그래서 12월은 설렘으로 가득한 한 달이었다.

사회 전체가 흥에 겨웠다.

물건을 파는 상인들의 입장에서도 이 한 달 동안의 매출에 설렘이 있었을 것이다.

직접 조사해 보지는 않았지만 캐럴이 끼치는 경제적인 효과는 엄청났을 것이다.

그런데 1990년대의 어느 해부터 크리스마스 캐럴에 저작권 시비가 붙기 시작했다.

“내가 부른 음악을 틀려면 비용을 내시오!”라는 목소리가 울려 퍼졌다.

덜컥 겁이 난 가게들이 밖으로 내놨던 커다란 스피커들을 매장 안으로 옮겼다.

최대한 소리를 죽이도록 했다.

캐럴이 숨죽이는 소리가 되고 말았다.

캐럴이 숨을 죽이자 길거리가 조용해졌다.

캐럴이 사라지자 크리스마스가 오고 있는 걸 느낄 수가 없게 되고 말았다.

교회 십자가의 성탄 불빛이 보이기도 하지만 그보다 더 밝은 네온사인에 가려 잘 보이지도 않는다.




음악을 틀려면 사용료를 내라는 주장은 가수들만의 주장은 아니었을 것이다.

어쩌면 그런 주장은 우리 사회가 선진사회로 들어서고 있다는 증거이기도 했다.

그전에는 음악을 녹음하고 복사하고 편집하는 일을 아무렇지도 않게 행했다.

학교 앞 문방구에 가면 최근 인기가요들을 복사해서 팔았다.

정식 앨범을 구입하려면 비용이 만만치 않게 나갔는데 복사한 것은 1~2천 원이면 구할 수 있었다.

당연히 가수들이나 소속사의 입장에서는 막대한 피해를 보았다.

정직하고 공정하게 음악을 구입하여 들으라는 목소리가 나올 수밖에 없었다.

나도 그 의견에 찬성했었다.

지금까지도 그 결정에는 후회가 없다.

그런데 그 주장이 크리스마스 캐럴에까지 불똥이 튀었다.

크리스마스 음반도 저작권을 지불하라는 법원 판결이 나왔다.

그 후로 크리스마스 캐럴이 잘 들리지 않는다.

캐럴이 들리지 않으니 크리스마스가 가까운 것도 모르겠다.




내 컴퓨터에는 오래전에 모아둔 크리스마스 캐럴 파일들이 있다.

가끔 그 파일들을 재생해보기는 한다.

그런데 나 혼자서 듣는 캐럴은 영 흥이 나지 않는다.

기쁨은 함께 나눌 때 배가된다고 하는데 캐럴도 그런 것 같다.

혼자만 누리는 기쁨이 재미가 없듯이 혼자만 듣는 크리스마스 캐럴도 흥이 나지 않는다.

역시나 사람은 함께 기쁨을 나누고 함께 흥겨워야 한다.

가끔 이렇게 예전의 크리스마스 분위기가 사뭇 그리워진다.

거리마다 오고 가는 많은 사람들, 그 사이에 울려 퍼지던 크리스마스 캐럴, 구세군 냄비의 딸랑이는 소리, 사랑하는 이에게 보내려고 꾹꾹 눌러쓰던 성탄 카드, 교회학교 성탄발표회, 크리스마스이브 밤 열두 시에 떠났던 새벽송.

“메리 크리스마스!” 외치던 인사들.

성탄트리, 성탄 촛불, 헨델의 메시아.

크리스마스에 얽힌 숱하게 많은 추억들이 있다.

크리스마스 캐럴과 함께 지금은 가뭇해지는 추억들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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