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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박은석 Dec 14. 2023

기다림 그 후에는...


딸아이의 대학입학 수시 지원 결과를 기다리고 있다.

이번 주 금요일에 발표한다.

하루 이틀 전에 발표하기도 한다고 해서 혹시나 하는 마음으로 기다리고 있다.

진인사대천명(盡人事待天命)!

사람이 자기 할 일을 다 마치고 그 후에는 하늘의 뜻을 기다리라는 말이다.

이 말이 참 좋다.

딸아이가 할 일은 다했다.

부모로서 우리가 할 일도 다했다.

이제는 하늘의 뜻을 기다릴 뿐이다.

만약 내가 원하는 대로 일이 이루어진다면 하늘의 뜻과 나의 뜻이 딱 맞았다는 말이 된다.

만약 내가 원하는 대로 일이 이루어지지 않는다면 하늘의 뜻과 나의 뜻이 달랐다는 말이 된다.

우리 조상들은 유, 불, 선 등 다양한 종교를 믿었지만 그보다 먼저 기본적으로 하늘을 믿었다.

하늘의 뜻에 따라 우리의 생사화복의 변화가 생긴다고 믿었다.

무지해서 그랬고 무식해서 그런 것 같다고 하는 사람들도 있지만 사실은 굉장히 현명한 삶의 모습이었다.     




만약 하늘을 믿지 않았다면 진인사대천명이란 말은 나오지 않았을 것이다.

스스로 자신의 삶을 개척할 뿐이다.

자기 할 일을 다 끝냈는데 다행히 그 결과가 자기가 원하는 대로 되었다면 더없이 좋을 것이다.

그때는 자기 능력으로 이만큼의 일을 이루었다며 자랑하고 다닐 것이다.

그런데 만약 자기가 할 일을 다 마쳤음에도 불구하고 그 결과가 자기가 원하는 대로 되지 않는다면 어떻게 될까?

그렇게 된다면 이 땅에서 지옥의 맛을 보게 될 것이다.

내 능력이 부족했다고밖에 해석되지 않는다.

분명히 최선을 다했는데 아무도 나의 최선을 믿어주지 않는다.

게을렀거나 소홀했거나 최선을 다하지 않았기 때문에 결과가 안 좋게 나왔다고 해석할 것이다.

진을 다 빼도록 일을 했는데도 결과가 안 좋았다면 그다음의 일에는 도전을 하기도 쉽지 않을 것이다.

우울감이 안개처럼 밀려오고 좌절과 절망이 친구처럼 다가올 것이다.     




생각해 보니 자신의 능력만 믿는 것보다 하늘을 믿는 게 천만 배 더 나아 보인다.

다행히 나는 하늘의 뜻을 믿는다.

하늘에 계신 하나님을 믿는다.

그래서 지금 기다림의 시간을 가지고 있다.

하늘의 뜻이 무엇인지, 우리에게 어떻게 그 뜻이 이루어질지 기다리고 있다.

우리가 원하는 대로 결과가 나온다면 기쁨과 환희, 축하와 축복의 시간이 이어질 것이다.

하지만 우리가 원하는 대로 결과가 나오지 않는다면 슬픔과 눈물 위로와 격려의 시간이 이어질 것이다.

그리고 그다음에는?

기다림의 시간이 지나면 그다음은 어떻게 할 것인가?

그다음에는 그냥 살아갈 뿐이다.

매일의 삶을 매일 살아갈 뿐이다.

기다림의 결과가 우리가 원하는 대로 나온다고 해도 그다음에는 그다음의 날들을 살아갈 것이고 기다림의 결과가 우리가 원하는 대로 나오지 않는다고 해도 그다음에는 그다음의 날들을 살아갈 것이다.

그게 바로 우리의 삶이다.




기다림은 우리에게 설렘을 준다.

하지만 기다림의 결과는 순간이다.

순간 지나간다.

결혼식 날짜를 잡고 긴 시간 기다렸는데 그날이 훌쩍 지나갔다.

첫아이를 임신하고 열 달을 기다렸는데 출산의 시간은 순식간에 지나갔다.

그 기다림의 시간을 보낸 후에는 일상의 삶을 살아가고 있다.

일상의 삶은 무덤덤할 것이다.

설렘을 느끼기도 쉽지 않을 것이다.

오늘이 어제 같고 어제가 그제 같은 느낌이 들 수도 있다.

무의미하고 무상한 기분이 들 수도 있다.

그러나 이런 일상의 삶은 언젠가 우리가 그토록 기다렸던 삶이다.

우리가 기다린 삶이 일상의 삶, 오늘의 삶이다.

내가 화사한 삶을 기다렸다면 오늘 화사하게 차려입고 어디론가 나가 보면 된다.

내 기다림이 고즈넉했다면 오늘 차분한 분위기에서 차 한잔 마셔보면 된다.

기다림은 언젠가 끝이라는 순간을 맞이한다.

그다음에는, 기다림 그 후에는, 그냥 나의 삶을 살아가는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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