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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박은석 Jan 05. 2024

그때의 삶이 그립다


영국 작가 벤 윌슨의 <어반 정글>이라는 책을 읽었다.

현대의 도시화 시대를 살아가면서도 자연 속에서의 삶을 생각해 보게 하는 책이다.

그는 인류가 문명을 발전시키면서 과학과 기술의 산물들을 얻었지만 잃어버린 것도 너무 많았음을 깨우쳐 준다.

인류가 잃어버린 것은 바로 ‘자연’이다.

도시의 콘크리트 건물들이 늘어서면서 그만큼의 숲과 나무와 풀이 사라졌고 그 안에 서식하던 짐승들과 곤충들은 살아갈 터전을 잃었다.

인류는 삶의 터전을 넓히기 위해서 도시를 더 넓혀갔고 또 그만큼의 숲과 나무와 짐승들과 곤충들이 사라졌다.

이만하면 괜찮은 도시가 되었다고 느꼈을 때 인류는 그때서야 잃어버린 것을 알게 되었다.

숲과 나무와 풀을 다시 살리려면 어떻게 해야 하는지, 떠나간 짐승들과 곤충들을 불러 모으려면 어떻게 해야 하는지 골머리를 쓸 수밖에 없게 되었다.

이 모든 것 없이 사람만 살아갈 수는 없기 때문이다.




도시의 초고층 아파트에 사는 사람도 시간을 내서 근교의 산이 보이는 곳, 강이 보이는 곳으로 간다.

콘크리트 벽으로는 채울 수 없는 마음의 허전함이 있다.

그 허전함은 흙 내음이 나는 바람을 맞아야 해결된다.

흙 내음이 나는 산자락이나 강가에 가려면 자동차를 타고 한 시간은 족히 가야 한다.

시간도 들여야 하고 돈도 들여야 한다.

내 어릴 적에는 제자리에서 한 바퀴 돌다 보면 산도 보이고 숲도 보였다.

튼튼한 두 다리로 조금만 걸어가면 산에도 가고 숲에도 가고 물가에도 갔다.

돈이 들지도 않았고 시간이 많이 들지도 않았다.

내 고향에 있던 봉개국민학교는 인근 마을에 있는 아이들까지 다니는 학교였다.

학교에서 4Km 정도 떨어진 명도암과 용강에서 오는 아이들이 있었다.

그들은 아침에 등교할 때 한 시간, 오후에 하교할 때 한 시간을 걸었다.

오고 가는 길에 밭도 나오고 숲도 나왔다.

그 길이 제주의 올레길이다.




참 신기하다.

어렸을 때는 지긋지긋한 환경이었다.

어서 어른이 되어 그 환경을 떠나고 싶었다.

그런데 어른이 되고 시간이 지나고 보니 어렸을 때의 그 환경으로 돌아가고 싶은 마음이 든다.

그때는 자동차를 타는 게 너무 부러웠는데 지금은 올레길을 걷는 게 너무 부럽다.

그때는 전깃불 환하게 밝힌 곳이 좋았는데 지금은 캄캄한 밤에 별똥별 떨어지는 모습을 볼 수 있는 곳이 좋아 보인다.

<어반 정글>의 저자 벤 윌슨도 나와 비슷한 마음이었던 것 같다.

도시의 편안한 삶이 나은지 시골의 좀 불편한 삶이 나은지 물어보는 것 같다.

답은 정해졌다.

그도 시골의 좀 불편한 삶을 추구하고 있다.

책을 읽는 내내 내 인생에서 사라져가고 있는 환경을 생각해 보았다.

촌스럽고 투박한 것은 버리고 세련되고 우아한 것만 추구하는 우리의 세태도 생각해 보았다.

그러나 이렇게 살든 저렇게 살든 그 끝은 자연으로 돌아가는 것이다.




미래사회에는 지금보다 훨씬 편한 세상이 될 것이다.

인류는 굳이 몸을 움직이지 않고도 말 한마디, 글 한 문장만 제시하면 자신이 원했던 일들을 얻을 수 있을 것이다.

아예 스마트폰에 입을 대고 도와달라고 말하면 어떤 어려움도 슬기롭게 이겨낼 수 있는 지혜를 얻을 수 있을 것이다.

정말 좋은 세상이 우리 눈앞에 오는 것 같다.

하지만 편안한 삶이 곧 좋은 삶이라고 할 수는 없다.

정지용 선생의 <향수>라는 시가 생각난다.

1930년대의 가난한 농촌의 삶을 그려주고 있는 시이다.

지금은 그때보다 훨씬 잘 살고 있다.

그래서 그때보다 지금이 행복하냐고? 아니다.

전혀 그렇지 않다.

그래서 시인의 노래처럼 “그곳이 차마 꿈엔들 잊히일리야.”를 뇌아린다.

그때는 지금의 삶이 부러웠고 지금은 그때의 삶이 부럽다.

그중에서도 더 좋은 삶을 말하라면 그때의 삶이라고 대답하겠다.

하늘에서 별똥별이 떨어지던 그런 날의 삶 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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