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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박은석 Jan 17. 2024

메트로폴리탄 미술관의 경비원


패트릭 브링리라는 작가가 쓴 <나는 메트로폴리탄 미술관의 경비원입니다>라는 책이 있다.

어려서부터 어머니의 영향으로 전시회에 자주 갔고 아버지의 영향으로 음악에 친근해진 작가이다.

대학을 졸업하고 꽤 괜찮은 직장도 많았을 텐데 작가는 메트로 폴리탄 미술관의 경비원이 되었다.

‘경비원’이라는 단어에 작가의 모습이 그려진다.

푸른색 제복을 입고 각진 모자를 쓰고 근엄한 표정으로 서 있는 모습.

허리에는 권총을 차고 있지만 총알이 장전되어 있을 것 같지는 않다.

폼만 그럴싸한 모습이다.

미술관의 큐레이터라면 작품에 대한 지식을 갖추고 있고 어떤 작품을 어느 곳에 전시하는 게 나은지 잘 판단하는 전문가다운 느낌이 든다.

그런데 경비원이라고 하면 특별한 재능이나 지식이 있을 것 같지는 않다.

단지 우람한 체격이라면 도움이 될까 싶다.

그래도 아파트 경비원보다는 좀 젊은 사람이지 않을까 하는 생각이 든다.




그런데 이 사람.

패트릭 브링리는 단순한 경비원은 아닌 것 같다.

사람들은 그에게 “화장실이 어디에 있나요?”라고 묻기보다 “화장실?”이라는 짧은 말을 건넨다.

말이 짧으면 그만큼 상대방을 대하는 마음도 짧다.

그도 그 정도는 알고 있다.

그러나 친절하게 대해준다.

경비원은 아무 데나 왔다 갔다 할 수 없다.

한 자리에 오랫동안 서 있어야 한다.

그래서 경비원인 그가 볼 수 있는 그림의 개수는 한계가 있다.

하지만 많은 그림을 볼 수는 없어도 한 가지 그림을 오랫동안 볼 수 있는 기회는 있다.

그는 그런 기회를 자신의 특권으로 여긴다.

아무리 좋은 곳에서 일을 하더라도 그 일하는 장소보다 더 중요한 게 있다.

쉴 수 있는 시간과 장소이다.

메트로폴리탄 미술관은 세계 최고의 미술관이지만 그곳에서 일하는 경비원들은 짧은 점심시간에 잠시 햇빛을 쬐며 눈을 붙일 수 있는 구석진 계단을 찾는다.

그곳이 그들에게는 천국이다.




메트로폴리탄 미술관은 해마다 7백만 명의 방문객들을 맞이한다.

뉴욕을 기반으로 하는 양키스, 메츠, 자이언츠, 제츠, 닉스, 네츠의 관중을 모두 합친 것보다 더 많은 수다.

자유의 여신상이나 엠파이어 스테이트 빌딩의 방문객보다도 많다.

루브르박물관, 중국국립박물관 다음으로 많은 방문객을 맞이한다.

유치원 아이들을 데리고 오는 동네 아줌마도 있고 비싼 경비를 지불하고 비행기를 타고 날아온 외국인들도 있다.

미국에 단 한 점밖에 없는 레오나르도 다 빈치의 작품을 찾는 사람도 있다.

그런 사람에게는 미안하지만 워싱턴 뉴욕 메트로폴리탄 미술관이 아니라 워싱턴 D.C.에 가라고 알려줘야 한다.

미술에 대해 문외한인 학생들을 만나면 미술에 대한 흥미를 불러일으킬만한 이야기도 들려줘야 한다.

물론 경비원이니까 그런 일을 하지 않아도 되지만 이 사람 패트릭 브링리는 기꺼이 학생들에게 짧은 미술 강좌를 열어준다.




미국이란 나라가 어떤 나라인가?

자본주의가 가장 앞선 나라이다.

돈이면 뭐든지 할 수 있는 나라이다.

돈을 많이 벌면 사회적으로 성공했다고 하는 나라이다.

그런데 그런 나라에서 한 끼에 1달러짜리 점심식사를 하면서도 마냥 만족해하는 사람이 있다.

피카소의 작품을 주구장창 볼 수 있다는 것에 기뻐하는 사람이 있다.

짧은 나이에 세상을 떠난 형님과의 마지막 순간도 한 폭의 그림이었고, 한 사람을 만나 사랑을 만들어 가는 과정도 한 폭의 그림이었고, 갓 태어난 아이들을 키우는 시간들도 한 폭의 그림이었다.

그에게는 인생의 모든 순간이 그림과 그림의 연속이었던 것 같다.

그의 직업이 메트로폴리탄 미술관의 경비원이지만 내가 보기에는 그의 인생 자체가 하나의 거대한 미술관인 것 같다.

자신의 가족과 인생을 사랑하고 자신의 직업과 직장을 사랑하고 자신의 현재와 취미를 사랑하는 그 사람, 패트릭이 참 좋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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