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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박은석 Jan 11. 2024

그렇게 우리의 삶은 역사가 된다


해방 전후에서 한국전쟁까지의 우리 근현대사에 관심이 있다면 이병주 선생의 <관부연락선>과 <지리산>, 그리고 조정래 선생의 <태백산맥>을 읽어보라는 이야기가 있다.

‘관부연락선(關釜連絡船)’은 일본의 시모노세키(下關)와 부산(釜山)을 오갔던 배였다.

이 사이의 바다를 일본어로 ‘Genkainada(玄海灘)’라고 하는데 그 한자음을 우리말로 읽으면 ‘현해탄’이 된다.

제국주의 일본인은 시모노세키에서 관부연락선을 타고 부산항에 도착하면 경부선 기차를 타고 경성이라 불리던 서울과 신의주, 안동을 거쳐 북경으로 갈 수도 있었고 만주를 지나 하얼빈으로 갈 수 있었다.

더 멀리 가고 싶으면 시베리아 철도로 갈아타서 파리와 런던까지도 갈 수 있었다.

반면에 조선의 청년들은 이 배를 타고 일제의 징용, 징병으로 끌려갔다.

<사의 찬미>라는 노래로 일약 스타덤에 올랐던 가수 윤심덕이 뛰어내린 곳도 바로 관부연락선 위였다.




강제 징집을 거부했던 일본 유학생들과 노동자들은 관부연락선을 타고 귀국한 뒤에 지리산 깊숙한 곳으로 숨어 들어갔다.

그곳에서 공동생활을 하며 항일 투쟁의 의지를 불태웠다.

소설 <지리산>의 이야기이다.

1945년 8월 15일에 해방을 맞았을 때 기쁨의 탄성을 지르면서도 앞날에 대한 두려움을 안고 지리산에서 내려왔다.

해방을 맞이하긴 했지만 조선시대처럼 왕이 통치하는 나라가 아니었다.

미국과 소련이 한반도를 둘로 나누어서 대신 통치했다.

일제의 식민지를 벗어났다고 했는데 또 다른 강대국들의 통치를 받아야 했다.

당시는 자유주의와 공산주의가 첨예한 대립각을 세우던 냉전시대였다.

우리나라 대한민국은 자유주의를 선택했다.

하지만 뒤끝이 좋지 않았다.

자유주의를 따르지 않는다는 이유로 많은 사람들을 단죄했다.

그 폭정이 무서워서 또다시 사람들이 지리산으로 숨어들었다.

소설 <태백산맥>의 이야기가 된다.




국민학교 6년과 중고등학교 6년을 합해서 모두 12년 동안 공교육을 받았지만 학교에서는 이런 이야기를 듣지 못했다.

역사를 가르치셨던 선생님은 우리나라의 근현대사는 말로 다 표현할 수가 없다는 애매한 말씀으로 끝을 맺으셨다.

고등학교 3학년 때의 마지막 국사 시간이 그렇게 끝났다.

그날 선생님은 무슨 말씀인가 더 하시려고 하는 듯했지만 더 이상 말씀을 이어가지 못하셨다.

선생님께서 하시고자 했던 이야기는 대학 선배들이 대신해주었던 것 같다.

선배들은 신입생인 우리들에게 소설 <태백산맥>을 꼭 읽어보라고 권했다.

하지만 그때는 내가 너무 다른 것에 정신이 팔려있었다.

많은 시간이 지난 후에 <태백산맥>을 읽고, <관부연락선>을 읽고 <지리산>을 읽었다.

가슴이 멍했다.

당시 사람들은 지리산에 숨어서 어떻게 살았을까 궁금하기도 했다.

어떤 이들은 그들을 영웅이라고 했고 어떤 이들은 빨치산이라고 했다.





한국전쟁과 4∙19, 5∙16 혁명, 그리고 5월 18일의 광주를 거쳐 우리나라는 민주주의 국가로 자리매김을 할 수 있었다.

길게 뻗은 백두대간의 산맥을 넘은 기분이다.

우리 역사 자체가 하나의 ‘태백산맥’인 것 같고 ‘지리산’인 것 같고 ‘관부연락선’인 것 같다.

여기서 출발해서 거기까지 가는 하나의 인생길인 것 같다.

처음부터 그곳에 길이 있었던 것이 아니다.

누군가 한 번 지나갔고 그 뒤를 따라 또 다른 누군가 지나갔고 그렇게 두 명, 세 명, 열 명이 지나가자 그곳에 길이 생겼다.

신작로처럼 곧게 뻗은 길도 있지만 잘못 들어선 길처럼 구불구불한 길을 만나기도 한다.

자신들의 꿈과 이상을 펼치지도 못한 채 마지막 숨을 몰아쉬어야만 하는 사람들도 있다.

하지만 그들의 입에서는 한결같이 잘 살았다는 말이 튀어나온다.

자신들이 꿈꾸었던 세상을 떠올리며 “만세”를 부르기도 한다.

그렇게 우리의 삶은 역사가 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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