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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박은석 Jan 24. 2024

삶은 가혹하지만 그것과 함께 사는 게 삶이다


삶이 나에게 가혹하게 대한다는 느낌을 받을 때가 있다.

길거리를 걷다 보면 모두들 바쁘게 어딘가로 가고 있는데 나 혼자만 어디로 가야 할지 방향감각을 잃은 사람처럼 여겨질 때가 있다.

사람들이 많이 모이는 곳에 가면 모두들 즐겁게 지내는 것 같고 여유가 있는 것 같다.

가격이 꽤 나가는 물건들도 성큼 구입하고 비싼 먹거리도 잔뜩 주문하는데 나는 주머니 사정을 계산하고 있다.

뭐 하나 제대로 이룬 것도 없는데 나이는 들어가고 흰머리는 늘어나고 있다.

언젠가 몸이 안 좋아지는 날도 올 것이다.

동창생 중에 어떤 이는 노후 대책을 다 마련한 것 같은데 나는 여태 뭘 했는지 부끄러운 마음이 들 때도 있다.

나름대로 내 인생은 꽤 의미가 있었다고 말을 하지만, 글쎄, 누가 인정을 해 줄까 싶다.

스무 살, 청운의 꿈을 안고 서울로 올라오면서 멋들어진 인생을 살리라 마음먹었었다.

그런데 인생은 내 마음대로 되지 않았다.




억척스럽게 살았다고는 할 수 없지만 나름대로 부지런히 살았다.

남에게 폐를 끼치지 않고 반듯하게 살려고 노력했다.

하나님을 믿으며 사람들에게 좋은 말을 하면서 살았다.

주변 사람들이 나를 평가한다면 ‘나쁜 사람’이라고 평하지는 않을 것이다.

“그 사람, 참 괜찮은 사람이었어.”라는 평가를 할 것 같다.

그런데 나는 내 삶이 만족스럽지 않다.

괜찮게 살았으면 그에 따른 보상이 있어야 하는데 인생은 보상을 주는 데는 매우 냉정한 것 같다.

10시간을 공부하면 10시간 공부한 성과가 나온다.

10권의 책을 읽으면 10권의 책을 읽은 효과가 나온다.

그러나 인생은 10년을 살았다고 해서 10년의 인생 가치가 나오는 것은 아니다.

어떤 이는 100년의 인생을 살았어도 1년의 값어치도 없는 인생일 수 있고 어떤 이는 서른 인생을 살았어도 300년 넘게 회자되기도 한다.

천년이 하루 같고 하루가 천년 같은 게 인생인 것 같다.




인생의 무게는 살아온 햇수가 많다고 해서 무거운 게 아니다.

단 하루를 살아도 지구만큼의 무게를 짊어지는 인생이 있을 수 있고, 100년을 살아도 하루만큼의 인생 무게를 짊어지는 사람도 있다.

미국 흑인 작가인 마야 안젤루의 말처럼 인생은 숨을 쉰 횟수로 평가되는 게 아니라 얼마나 숨 가쁜 일이 많았느냐로 평가되는 것일 수 있다.

이런 나의 생각에 딱 부합되는 작가가 있었다.

바로 박완서 선생이었다.

어렸을 때는 개성의 부유한 가정에서 살았다.

갑작스레 아버지가 돌아가셨다.

개성에서의 안락한 생활을 접고 교육을 위해서 서울로 왔다.

어린 나이였지만 삶이 녹록지 않았다.

스무 살 한창 꽃 피울 나이에 한국전쟁을 겪었다.

살기 위해서, 가족을 살리기 위해서 할 수 있는 일은 다 했다.

사람을 만나 결혼을 했다.

이제 고생 끝, 행복 시작인 줄 알았다.

그런데 삶은 가혹했다.

사랑하는 남편을 잃었다.

그리고 아들도 잃었다.




깊은 슬픔에 갇혀 있을 때 어느 수녀원에 잠시 들렀다고 한다.

글을 잃고 말을 잃고 그림의 배경처럼 지냈을 것이다.

그러던 어느 날 같이 지내던 젊은 수녀와 사소한 감정이 충돌했다.

그때 박완서 선생은 자신이 얼마 전에 아들을 잃어서 정신이 없다 보니 실수를 했다며 사과했다.

그랬더니 그 젊은 수녀가 한다는 말이 “왜 자매님 아들은 죽으면 안 되는 거죠?”라고 했다.

상처에 식초를 뿌리는 말이었다.

하지만 박완서 선생은 그 말을 하나님의 음성으로 들었다.

‘왜 내 인생에 아픔이 있어서는 안 되는 거지?’ 

아픔이 없는 인생은 없다.

누구나 자신의 인생에는 그 인생만큼의 아픔이 있다.

누구나 살아가면서 흘려야 하는 눈물의 양이 있다.

그 눈물을 다 흘려야 인생이 끝날 것이다.

삶이 나에게 가혹하다고 느껴질 때가 있다.

하지만 삶은 나에게만 가혹한 게 아니다.

모두에게 가혹하다.

가혹한 삶과 함께 사는 게 삶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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