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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박은석 Jan 31. 2024

마음을 불편하게 하는 책은 나를 성장시키는 책이다


최근에 읽은 책들 중의 몇 권은 내 마음을 상당히 불편케 했다.

내용이 허접한 것은 아니었다.

한때는 베스트셀러였고 지금도 베스트셀러이기도 하다.

많이 팔리는 책이라고 해서 다 좋은 책이 아니다.

남들이 좋다고 해서 나에게도 좋은 책이 되는 것은 아니다.

어떤 책이든 그 책을 읽는 동안에는 그 책을 쓴 저자의 가치관이 나에게 주입된다.

그 저자의 가치관이 내가 생각하고 있는 가치관과 어느 정도 부합되면 그 책을 재미있게 읽게 된다.

그런데 그 저자의 가치관이 내가 생각하는 가치관과 충돌하게 되면 책을 읽는 내내 변비에 걸린 듯이 속이 불편해진다.

‘그만 읽을까?’하는 마음이 들기도 하고 읽던 책을 집어던지고 싶은 마음이 들기도 한다.

실제로 스무 살 때 어떤 책을 읽다가 너무 답답해서 던져버린 적이 있다.

20년 지나서야 그 책을 다시 읽을 수 있었다.

실은 엄청 좋은 책이었다.

에리히 프롬의 <사랑의 기술>이다.




서른아홉 살 때 책 읽기 운동을 벌이면서부터는 일단 내 손에 한 번 잡힌 책이라면 끝까지 읽으려고 한다.

책의 내용을 이해하든 못 하든 상관없이 일단 끝까지 읽고 책거리를 한다.

어떤 때는 숙제처럼 그냥 읽어버리기도 한다.

유명하다는 책이 눈에 띄면 일단은 집어 든다.

어디에서인가 인용하게 되는 책이 있으면 그런 책도 꼭 읽어보려고 한다.

어떨 때는 내 마음이 책 속에 쏙 빠져들기도 하지만 어떨 때는 책과 부딪치며 싸우기도 한다.

나름대로 독실한 기독교인이라 자부하는데 힌두교 경전인 <바가밧드기타>나 공자의 가르침인 <논어>나 불교의 경전인 <금강경> 같은 책이 쉽게 읽히겠는가? 그렇지 않다.

그런 책을 읽을 때는 내 속에서 내 것을 지키고 절대로 뺏겨서는 안 된다는 강한 고집이 생긴다.

내 마음에서 이런 갈등이 있음에도 불구하고 그런 책을 읽는 이유는 나와 다른 종교를 믿는 사람을 이해하기 위해서이다.




책을 읽으면 책 속에서 무언가 배운다고 하는데 배우는 것 못지않게 그 책과 싸우려는 것도 있다.

내 속에 있는 것을 절대로 뺏기지 않으려고 꽁꽁 감싼다.

책이 나에게 다양한 세계관을 던져주면 나는 그중에서 내가 좋아하는 세계관은 가져오고 내가 싫어하는 가치관은 밀쳐낸다.

그러기 때문에 어떤 책은 기분이 좋고 어떤 책은 불편하다.

리처드 도킨스의 <이기적 유전자>나 <만들어진 신> 같은 책은 불편했다.

그의 다양한 지식에는 감탄했지만 그의 주장을 받아들이기에는 나의 세계관이라는 방어벽이 너무 높고 두꺼웠다.

자미라 엘 우아실의 <세상은 이야기로 만들어졌다>라는 책을 읽을 때도 비슷한 감정이 일었다.

내가 믿는 구약성경의 이야기들이 난도질당하는 것 같아서 상당히 불쾌했다.

‘그렇지 않은데’ 하는 마음이 열 번도 더 들었다.

낯선 세계관이 밀려오자 곤혹스러웠다.

그래도 책을 던지지 않고 끝까지 읽었다.




<세이노의 가르침>은 읽는 내내 감정 정리가 힘들었다.

세이노 선생은 자본주의 사회에서 살아가는 나의 본심을 자꾸 건들었다.

“돈을 많이 벌 수 있는 방법이 있는데 너는 지금 뭐 하는 거니?”라는 질문을 하는 것 같았다.

어서 빨리 이 책의 굴레에서 벗어나고 싶었다.

마지막 책장을 넘기면서 한숨을 쉬었다.

지금처럼 살아서는 안 된다는 사실을 깨달았기 때문인지, 아니면 이제야 세이노의 울타리에서 벗어나게 되었다고 생각했기 때문인지 모르겠다.

내 생각과 결이 같지 않은 책을 읽는다는 것은 먹기 싫은 음식을 어쩔 수 없이 먹어야 하는 것처럼 불편한 일이다.

그러나 먹고 싶은 음식만 먹으면 건강하게 성장할 수 없다.

먹기 싫은 음식도 먹어야 한다.

그래야 이럴 때도 적응하고 저럴 때도 적응하게 된다.

책을 읽을 때 불편한 마음이 드는 것은 내가 성장하고 있다는 증거이다.

마음을 불편하게 하는 책이 나를 성장시킨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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