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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박은석 Feb 09. 2024

진짜가 가짜 같고 가짜가 진짜 같은 세상


유럽을 쑥대밭으로 만들었던 나치 독일의 수장 히틀러가 미술작품 수집에는 누구보다도 열심이었다.

도시를 파괴하고 수많은 사람을 죽이면서도 유명한 작가의 작품은 다치지 않게 하고 고이 가져갔다.

그 모습을 지켜본 나치의 2인자 헤르만 괴링도 미술작품 수집에 뛰어들었다.

히틀러의 허락을 받았는지는 모르겠지만 내 생각에는 히틀러 몰래 작품을 빼돌린 것 같다.

어쨌든 부지런히 작품을 모은 덕분에 괴링의 보물창고에도 진귀한 작품들이 많이 보관되어 있었다.

작품을 빼앗긴 박물관이나 작품 주인들 입장에서는 억장이 무너지는 일이었을 것이다.

2차 세계대전이 독일의 패망으로 끝나자마자 미술계에서는 빼앗긴 작품을 되찾아 오려는 움직임이 일어났다.

연합군 측에서는 독일이 항복 선언을 한 지 9일 후인 1945년 5월 17일에 모뉴멘츠맨(문화재부대)을 창설하였는데 빼앗긴 미술작품을 찾아오기 위한 특수부대였다.




모뉴멘츠맨은 오스트리아 잘츠부르크 근처의 소금광산에 헤르만 괴링의 비밀창고가 있다는 첩보를 입수해서 기습작전을 펼쳤다.

놀랍게도 그곳에는 렘브란트, 보티첼리, 르누아르, 모네, 반 에이크, 미켈란젤로 등의 작품이 근 1만 점이나 숨겨져 있었다.

그중에는 페르메이르의 〈예수 그리스도와 간통한 여인>이라는 작품도 있었다.

연합군은 이 작품이 어떤 경로를 거쳐서 괴링에게까지 전해졌는지 그 판매 과정을 추적하였다.

그 결과 나치에 적극 협력한 미술품 거래상인 알로이즈 미들이란 인물을 체포하였다.

알로이즈 미들은 네덜란드 화가인 판 메이헤런(Han Van Meegeren)이 1943년에 자신에게 그 작품을 팔았고 자신은 다시 괴링에게 팔았다고 실토하였다.

1945년 5월 29일에 네덜란드 경찰은 드디어 판 메이헤런을 체포하였고 그에게 국가의 중요한 문화유산을 나치에게 팔아넘긴 점을 들어 반역죄로 기소하려고 했다.




당시의 사회적인 분위기는 나치의 잔재를 청산하기 위해서 나치에게 부역한 자에게는 사형선고가 잇따랐다.

반역자로 낙인찍힌 판 메이헤런도 그런 운명에 처해진 것이었다.

체포된 지 3일 후에 판 메이헤런은 자신이 페르메이르의 작품을 판매하지 않았다고 항변하였다.

자세히 보면 그 그림은 진품이 아니라 위조품이고 자신은 위조품을 진품이라고 속여서 괴링에게 팔았다는 것이다.

그는 젊었을 때 화가를 꿈꾸었는데 자신의 작품이 인정을 받지 못하자 미술계에 복수하고자 위조품을 그리기 시작했다.

무려 6년간 위조 연구에 몰두한 끝에 페르메이르의 작품을 완벽하게 위조할 수 있었다고 했다.

그의 말이 통하지 않자 그는 그림을 그릴 수 있게 해 달라며 감시관들이 지켜보는 가운데 근 5개월 동안 페르메이르 스타일의 그림을 그려냈다.

사정을 모른 채 그 그림을 본 감정사들은 그 그림이 페르메이르의 진품이라고 평을 내렸다.




판 메이헤런은 위조품을 그려서 괴링으로부터 엄청난 양의 돈을 받았으니 나치에게 동조한 것이 아니라 나치를 속인 일을 한 것이라고 자신을 변호하였다.

결국 법원은 그에게 반역죄의 근거가 없다며 기각했다.

하지만 사람들의 눈을 속였으니 사기죄에는 해당된다며 1년 형을 내렸다.

얼마 전까지 판 메이헤런을 향해 반역자라고 외쳤던 사람들은 이제 그를 향해 나치를 속인 영웅이라며 추앙하기까지 하였다.

살다 보면 진짜가 가짜 같고 가짜가 진짜 같은 일을 겪기도 한다.

판 메이헤런이 그린 짝퉁을 받고 진품인 줄 알고 입 헤벌쭉 벌렸을 괴링을 생각하면 고소한 마음이 든다.

판 메이헤런은 그렇게라도 나치에게 복수를 한 것이다.

1947년 12월 30일 판 메이헤런이 세상을 떠나자 이상한 이야기가 떠돌기 시작했다.

“판 메이헤런이 괴링에게 판 작품이 진짜 진품이었지 않을까? 감정사들도 어떤 게 진품인지 모른다며?”

판 메이헤런이 위조품을 그리기 위해 작업하는 모습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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