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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박은석 Feb 10. 2024

부족한 게 다행이고 모자란 게 다행이다


공자의 사상을 물려받았으면서도 유가에서는 삐딱하게 보는 인물, 순자(荀子)가 있다.

우리에게는 맹자의 성선설(性善說)에 반대하여 성악설(性惡說)을 주창한 인물로 잘 알려져 있다.

사람의 성품이 본래부터 악하기에 꾸준히 공부하고 연마해서 좋은 성품을 만들어야 한다고 주장한 인물이다.

순자도 나름대로 공자의 사상을 잘 따른다고 자부했다.

공자의 제자들은 공자의 가르침을 모아서 <논어>를 편찬했고 맹자는 공자의 사상을 담은 <맹자(孟子)>를 집필했다.

그들 못지않게 순자도 나름대로 공자의 가르침들을 정리해서 책을 편찬했다.

자신의 이름을 딴 <순자(荀子)>이다.

<순자(荀子)>를 읽다 보면 <논어>나 <맹자>와는 다른 분위기를 느낄 수 있다.

공자의 의외의 모습이 보인다.

공자의 비하인드 스토리들이라고 할 수 있겠다.

‘공자도 사람이었구나!’ 하는 생각이 들기도 하고 ‘역시 대단한 사람이었어!’라는 생각이 들기도 한다.




공자가 노(魯)나라의 대사구(大司寇)가 되었을 때 있었던 일이다.

대사구는 형벌을 관장하는 매우 높은 관직이었다.

재상에 해당하는 벼슬이었을 것이라고 보기도 한다.

그 높은 관직을 받고 조정에 나간 지 7일 만에 공자는 소정묘(少正卯)를 처형하였다.

소정묘는 공자에 비하면 낮은 위치였지만 역시 조정에 드나드는 꽤 높은 관리였다.

소정(少正)이라는 이름이 곧 관직의 이름이었다.

그런데 왜 소정묘를 처형했는지에 대해서는 일언반구도 없다.

사람들이 놀라고 의아해할 것은 당연했다.

다른 사람이라면 몰라도 공자는 절대로 사람을 죽이지 않을 것 같았다.

그가 평상시에 강조한 가르침이 인(仁)과 예(禮) 아니었나?

인과 예를 추구하는 공자가 사람을 죽였다는 것은 전혀 어울리는 일이 아니었다.

죽어 마땅할 사람도 살려주라고 해야 공자다운 모습이다.

그런데 공자가 사람을 죽였다.

제자들이 궁금해서 물어보았다.




공자가 대답했다.


“사람에게는 다섯 가지 부류의 악한 자가 있다.

흔히 도둑이 악하다고 하지만 도둑은 여기에 해당하지도 않는다.

그 다섯 부류는 다음과 같다.

첫째는 사리에 통달했지만 음험한 마음을 가진 자이다(심달이험, 心達而險).

둘째는 행실이 한쪽으로 치우쳐 완고한 자이다(행벽이견, 行癖而堅).

셋째는 거짓말을 잘하면서도 언변이 좋은 자이다(언위이변, 言僞而辯).

넷째는 추악한 것을 잘 기억하면서도 박식한 자이다(기추이박, 記醜而博).

다섯째는 잘못된 것을 따르면서도 겉으로는 빛이 나는 자이다(순비이택, 順非而澤).

이 다섯 가지 가운데 한 가지만 가진 사람도 군자에게 벌을 받는데 소정묘는 이 모두를 가지고 있었다.

그가 거처하는 곳은 무리를 모으기에 충분했고, 그의 말은 사람을 현혹시키기에 충분했고, 그의 강함은 반란을 일으켜 능히 독립할만했다.

그는 소인배의 우두머리였다.

죽이지 않을 수 없었다.”




이 내용은 <순자(荀子)> 유좌(宥坐) 편에 나오는 이야기이다.

내가 비록 정치를 하는 사람은 아니지만 공자가 지적한 다섯 가지 부류에 해당되는지 곰곰이 생각해 보았다.

공자는 도둑놈보다 이 다섯 부류의 놈들이 더 악하다고 한 것이다.

다행스럽다.

첫째로, 나는 음험하기는 하지만 사리에 통달하지 못했다.

둘째로, 나는 완고하기는 하지만 행실이 한쪽으로 치우치지 않고 왔다 갔다 한다.

셋째로, 나는 거짓말을 잘하기는 하지만 언변이 좋지 않다.

넷째로, 나는 추악한 것을 잘 기억하지도 못할 뿐만 아니라 박식하지도 않다.

다섯째로, 나는 잘못된 것을 따르기는 할지 모르지만 겉에서 빛이 나는 자는 아니다.

이렇게 보니 나 같은 사람은 공자가 재상이 아니라 임금이 된다고 하더라도 그 앞에서 목이 달아나지 않을 것 같다.

나에게는 잘난 점이 많지 않고 오히려 모자란 부분이 더 많다.

정말 다행이다.

공자 선생님! 살려주세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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