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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박은석 Feb 19. 2024

정치에 빠져서 신앙을 잃어버릴까 안타깝다


아브라함 카이퍼라는 네덜란드 수상이자 신학자였던 인물이 있었다.

1920년에 세상을 떠났으니까 벌써 100년 전 사람이다.

1517년 이후 유럽의 대부분의 국가가 그러하듯이 네덜란드도 종교개혁으로 인한 홍역을 톡톡하게 치른 나라이다.

중세 유럽 사회가 종교와 정치가 밀착된 정교일치의 사회였기에 종교의 자유를 외쳤던 자들은 정치적으로 반동주의자 취급을 받을 수밖에 없었다.

그런 역경을 이겨내고 네덜란드를 비롯한 유럽의 여러 나라들이 종교개혁을 성공시켰다.

1648년 베스트팔렌 조약으로 100년 넘는 기간 동안 이어온 종교전쟁이 끝이 나고 유럽 각 지역은 영주가 어떤 종교를 믿느냐에 따라 그 영주가 다스리는 영지에 살고 있는 백성들의 종교가 달라졌다.

종교개혁으로 말미암아 가톨릭에서 독립한 개신교 진영에서는 자신들의 신앙을 맘껏 표출할 수 있었으니까 천국과 같았을까? 실상은 그렇지만은 않았다.




1517년 루터의 종교개혁이 성공적으로 일어날 수 있었던 배경에는 여러 요인들이 얽혀 있다.

12세기에 있었던 십자군 전쟁이 기독교 세계가 이렇다 할 성과를 얻지는 못했지만 동양의 우수한 문물을 유럽에 소개하는 계기가 되었다.

이로 인해 유럽사회에 지식의 문이 넓게 열렸다.

이슬람과의 갈등으로 비단길을 이용하지 못하게 되자 동양과의 무역을 위해서 바닷길을 찾게 되었다.

흔히 지리상의 발견이라고 부르는 새로운 항로를 발견하게 되었다.

이로 인해 항해술과 천문학이 발달했다.

구텐베르크의 인쇄술의 보급은 지식을 널리 전파하고 보관할 수 기폭제가 되었다.

인간에게는 무한한 능력이 있다는 생각이 싹트면서 인간미를 탐구하는 연구들이 줄을 이었다.

가장 인간미 넘쳤던 사회가 고대 그리스 사회였던 것을 기억하며 그때로 돌아가자는 르네상스 운동이 줄을 이었다.

시대를 관통하는 가치관은 철저한 인문주의였다.




인문주의 사상은 유럽 사회에 굉장한 역동을 불러일으켰다.

도시가 발달했고 상업이 활성화되었다.

도시에는 대학이 세워져서 문학과 철학, 예술과 과학의 발전에 이바지했다.

최소 자본으로 최대의 효과를 올리려는 장사꾼의 마음들이 모아져서 산업혁명이라는 엄청난 사회변화를 이루게 되었다.

불과 몇 년 사이에 사람들의 삶이 통째로 바뀌었다.

그전까지는 종교가 사람들의 삶을 요람에서 무덤까지 전부 통제했었다.

사람들이 모여 사는 마을은 작은 종교사회였다.

종교 지도자가 용납하지 않는 자는 마을에서 발붙일 수 없었다.

베스트팔렌조약이 영주의 종교에 따라 백성들의 종교가 달라지게 한 것은 그 당시 사회적 분위기를 반영한 처사였다.

그런데 종교개혁 이후에 사회적인 분위기가 달라졌다.

종교 중심의 사회에서 인간 중심의 사회로 바뀌었다.

각자 자기 맘에 맞는 대로 살아가는 사회가 되었다.

인문주의 세상이 되었다.




이러한 시대에 아브라함 카이퍼가 나타나서 외쳤다.

“우리 삶의 모든 영역에서 그리스도께서 ‘나의 것이다!’라고 외치지 않는 영역은 하나도 없습니다!” 

네덜란드의 수상이었으니까 그의 말은 엄청난 영향을 끼쳤을 것이다.

물론 일부 기독교인들은 열광했다.

그러나 인간 삶의 모든 영역을 그리스도가 통치한다는 그의 말을 곱씹어 볼 필요가 있다.

요즘 선거철이어서 그런지 내 주변에서 종교인이라면 이쪽 정당을 밀어야 하지 않느냐고 무언의 압력을 넣는 자들이 너무 많기 때문이다.

아브라함 카이퍼의 주장대로라면 정치적으로 내가 좋아하는 정당도 그리스도가 통치하고 내가 싫어하는 정당도 그리스도가 통치한다는 말이 된다.

내가 싫어하는 정당을 하나님이 멸망시키지 않는 이유가 있다면 나름대로 뜻이 있고 이유가 있어서일 것이다.

이런 게 제대로 된 믿음인데 정치에 빠져서 제대로 된 신앙을 잃어버릴까 안타깝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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