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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박은석 Feb 20. 2024

스토아철학자들에게 빠진 날


그리스 스토아학파 철학자들의 글을 읽다 보면 깜짝깜짝 놀랄 때가 많다.

그들이 과연 나처럼 땅에 발을 붙이고 살았던 사람들인가 싶다.

어떤 상황에 처하게 되었을 때 보통 사람들이 생각하고 말하고 행동하는 것과는 너무나도 차원이 다르다.

마치 다른 세계에서 온 사람들 같다.

스토아학파를 창시한 제논이란 사람은 철학자이면서 상인이기도 했는데 어느 날은 그가 타고 가던 배가 지중해 한가운데서 난파되었다.

그리고 그의 재산도 배와 함께 바닷속으로 가라앉고 말았다.

보통 사람들 같으면 이제 자기는 쫄딱 망했다며 울고불고 난리를 치고, 선장에게 물어내라고 원망도 할 것이다.

그런데 제논은 너무나 다른 모습을 보였다.

그는 자기 재산이 사라져 가는 것을 보며 “운명이 나에게 철학 공부에 몰두하라며 방해물을 없애는구나!”라고 말했다고 한다.

그 후로 정말 열심히 공부해서 스토아철학을 창시하게 되었다고 한다.




율리우스 카누스라는 철학자는 가이우스 황제의 미움을 받아서 사형에 처해지게 되었다.

황제는 카누스에게 살아날 수 있다는 희망을 버리라고 하였다.

그러자 카누스는 “가장 위대한 분께 감사할 따름이다.”라고 대답했다.

그리고 사형집행일까지의 마지막 열흘을 평온하게 보냈다고 한다.

사형집행일이 되었을 때도 카누스는 동료와 체스를 두고 있었다.

사형수를 호송하는 군인이 와서 그의 이름을 불렀다.

그러자 카누스는 남은 말을 세어보고서는 함께 체스를 두던 동료에게 “내가 죽고 나서 자네가 이겼다는 헛소문은 내지 말게.” 그러고는 호송하는 군인에게는 “당신이 분명히 봤으니까 내가 이 사람보다 한 점 앞섰다고 증인을 서 주시오.”라고 당부했다고 한다.

사형장으로 끌려가는 사람인데 잠시 바람 쐬러 나가는 사람처럼 태연했다.

자신의 인생을 한 편의 연극으로 여긴 것 같다.

조물주가 감독이고 자신은 하나의 배우로.




끌려가는 그를 보며 슬퍼하는 친구들에게 카누스는 “친구들, 슬퍼하지 말게. 자네들은 사람에게 영혼이 있는지, 그 영혼이 육체와 함께 죽는지 아니면 불멸하는지 궁금하겠지만 나는 곧 그 해답을 찾게 될 걸세.”라고 했다.


사형장에 가까이 다다르자 옆에서 한 철학자가 물었다.

“카누스, 지금 무슨 생각을 하는가? 기분은 어떤가?” 


그러자 카누스가 대답했다.

“내 영혼이 내 몸에서 빠져나오는 마지막 순간에 내 의식이 남아 있을지 지켜보려고 하네. 지금 그 생각을 하고 있네. 만약 뭔가 발견한다면 친구들에게 내 영혼의 상태를 알려주겠네.” 


죽음의 순간까지 위트 넘치는 말을 했다고 할 수 있지만 전혀 장난기 어린 말이 아니었다.

카누스는 진지했다.

죽는 순간까지 철학을 공부했던 것이다.

삶이 무엇이며 죽음이 무엇인지, 영혼이 무엇이며 어떤 상태로 존재하는지 알고 싶어 했다.

그는 평생 지적 호기심으로 충만한 삶을 살았다.




내가 제일 좋아하는 스토아철학자는 에픽테토스인데 그는 노예 출신이었고 한쪽 발에 장애가 있었다.

그는 세상에는 우리가 통제할 수 있는 일도 있고 통제할 수 없는 일도 있다고 했다.

우리의 의견이나 가치관이나 욕망 같은 것은 통제할 수 있다.

하지만 우리의 신체나 재산이나 명성 같은 것들은 우리가 통제할 수 없다.

우리가 통제할 수 없는 것들을 통제하려고 하면 불행해지고 두려움에 빠지게 된다.

가령 신체의 변화로 인해 질병이 생기고 죽음이 오는데 이것은 우리가 통제할 수 없다.

통제하려고 하면 걱정과 두려움이 생긴다.

그런데 이것을 자연스러운 현상으로 받아들이면 두려워하는 마음이 안 생긴다.

무엇을 통제할 수 있고 무엇을 통제할 수 없는지 알면 우리 삶이 훨씬 행복할 것이라고 했다.

혹시 마음에 걱정이 있다면 곰곰이 생각해 보자.

내 힘으로 통제할 수 없는 일인데 통제하려고 해서 두려운 것은 아닌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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