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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박은석 Feb 22. 2024

요즘 세태에 의사들의 삶을 생각해 본다


요즘은 아프면 안 된다.

설령 몸이 아파서 병원에 가도 의사를 만나기 어려울 수 있다.

그러면 어쩔 수 없이 끙끙대며 몸으로 때워야 한다.

그런 고생을 안 하려면 아프지 말아야 한다.

의사들이 가운을 벗으려고 한다.

인턴과 레지던트, 아니 의학대학에 다니는 학생들까지 자신의 진로와 직업에 대해서 깊이 고심하고 있다.

정부가 의학대학교의 입학 정원 수를 늘리겠다고 발표했기 때문이다.

의대생의 숫자가 많아지면 머지않아 의사의 숫자가 많아진다.

의사가 많아지면 나 같은 사람은 의사를 만나기가 훨씬 수월해지니까 좋을 수 있다.

의사가 많아지면 병원들도 서로 경쟁하게 될 것이다.

병원도 이윤을 창출해야 운영이 되는데, 병원에 이익을 줄 수 있는 손님, 즉 환자들이 많아야 병원이 유지될 것이다.

그러니 서로 의료수가를 줄이면서라도 환자들을 모시려고 할 것이다.

나 같은 사람에게는 너무나 반가운 이야기이다.




그런데 만약 내가 의사라면 이런 소식이 반가울까? 전혀 그렇지 않을 것이다.

어쨌든 나에게 오는 환자가 줄어들 것이다.

사람들이 건강하게 산다는 것, 좋은 의료 혜택을 받는다는 것은 분명히 좋은 일이다.

하지만 그 여파로 인해서 나의 소득이 줄어들면 또 다른 문젯거리가 생긴다.

의사도 사람이다.

솔잎과 이슬만 먹으면서도 건강하게 살 수 있는 도사가 아니다.

의사에게도 남편과 아내라는 배우자가 있고 아들과 딸이라는 자녀도 있고 연로하신 부모님도 있다.

그들을 봉양해야 할 책임감이 의사의 두 어깨를 짓누른다.

사람들이 아픈 것은 분명히 안 좋은 일인데 그 안 좋은 일이 의사에게는 좋은 일이 된다.

소득이 생기기 때문이다.

멋 모르는 사람들은 히포크라테스의 선서를 운운하면서 의사는 아픈 사람들을 돌보는 자리에 있어야 한다고 핏대를 올린다.

하지만 의사도 먹고살아야 그 히포크라테스의 선서를 지킬 수 있다.




신문 기사들은 외국의 경우와 우리를 비교한다.

왜 비교하는지 모르겠다.

외국의 경우는 그 나라의 사정이고 우리는 우리의 사정이 있다.

의사들이 환자를 외면한다는 자극적인 기사들이 쏟아지고 있다.

의사들의 관점에서 쓴 기사는 찾아보기 힘들다.

지금 상황에서는 의사들이 ‘나쁜 연놈’이 된 것 같다.

정부에서도 엄청 압박을 가하고 있다.

의사들 대부분은 중고등학생 때 전교 상위권을 달렸던 모범생들이었다.

대학에서도 귀를 닫고 공부에 열중했던 사람들이다.

스스로 괜찮은 사람이라고 생각하고 있었는데 갑자기 이기주의자라는 말을 듣게 되었을 때 그들의 멘탈은 처참하게 붕괴될 것이다.

나도 한때 모범생 기질을 지니고 있었기 때문에 그들의 마음을 조금은 이해할 수 있을 것 같다.

모범생은 자신의 이익에 대해서는 모질지 못한다.

그 대신 사람들의 인정과 존경을 생각한다.

그게 그들의 가장 큰 장점이자 단점이다.




신문기자들의 논리는, 의사는 환자가 있는 곳이라면 달려가라는 입장이다.

의사의 삶과 가족들에 대한 고려는 전혀 없다.

오직 환자만 부각시킨다.

그런 논리대로라면 정치인들에 대해서는 어떤 평가를 내려야 할까?

시민들이 아파한다면 열 일 제쳐두고서라도 그 아픔을 해결해 줘야 좋은 정치인 아닌가?

그런데 정치인들도 일단은 자기 자신이 먹고사는 일에 더 많은 관심을 쏟는 것 같다.

우리에게는 의사를 만나는 게 선택이요 재미일 수 있지만 의사들에게는 우리를 만나는 게 삶이요 생계일 것이다.

의사들도 자신의 삶을 잘 살 수 있어야, 가정을 잘 건사할 수 있어야, 아픈 환자를 제대로 돌볼 수 있을 것이다.

삶을 희생해서라도 환자를 돌보라는 것은 너무 무례한 요구이다. 

사람들은 의사들을 자원봉사자 정도로 생각하는 것 같다.

글쎄다. 

우리가 살아가는 자본주의사회에서 순수한 마음의 자원봉사자가 얼마나 될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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