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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박은석 Feb 26. 2024

책을 읽는 것과 영화를 보는 것, 그리고 나의 선택


전 세계인이 감동받는 베스트셀러 작품인데 그 작품을 영화로 만들었다가 흥행에 실패한 경우가 종종 있다.

감독이나 스텝들의 실력이 부족해서 그런 게 아니다.

주인공을 비롯한 배우들의 연기력이 떨어져서 그런 게 아니다.

굳이 이유를 따지자면 책으로 읽었을 때와 영화로 시청할 때의 차이라고 할 수 있다.

책을 읽을 때는 독자들이 각자 자기 마음속에 캔버스를 올려놓고 자기만의 그림을 그린다.

예를 들면 작품 속에서 시골길을 걷는 주인공이 나왔다고 치자.

그러면 그 글을 읽는 독자들은 자기들이 생각하는 시골길의 풍경을 생각한다.

어떤 이는 산과 골짜기 사이로 시냇물이 흐르는 꽃피는 산골의 풍경을 그리고, 어떤 이는 보리밭 사잇길로 기다랗게 연결된 들판을 그린다.

그런가 하면 엄마랑 누나랑 강변에서 노니는 어린아이를 그리기도 한다.

책은 작가가 샘플을 보여주면 독자들이 각자 자기가 보고 싶은 대로 본다.




영화를 보는 것은 책을 읽는 것과 많이 다르다.

물론 영화를 보면서도 상상력을 키울 수 있다.

그러나 어디까지나 제한적이다.

영화를 시청하는 이들은 연출자가 보여주고 싶어 하는 것을 본다.

연출자의 의도에 따라 배우들이 연기를 한다.

영상감독과 음향감독도 총감독의 의도에 따라 사진을 찍고 음악을 배열한다.

프랑스 작가 빅토르 위고의 <레 미제라블>을 책으로 읽다 보면 장 발장을 응원하기도 하지만 장 발장을 잡으려고 인생을 내 건 자베르 형사를 응원하게도 된다.

자베르처럼 자기 직업에 대한 사명감에 충실한 사람을 만나기가 쉽지 않기 때문이다.

그런데 영화를 보면 자베르는 장 발장을 괴롭히는 못된 사람으로만 보인다.

시민의 안전과 질서를 지켜주는 경찰인데 영화에서는 자베르가 시민을 괴롭히는 사람으로 보인다.

영화가 자베르 형사를 그렇게 보여주기 때문이다.

영화는 감독이 보여주는 대로 우리가 본다.




얼마 전에 어떤 분이 나에게 좋은 영화가 나왔다며 소개해 주었다.

그 영화를 보면 이전에 몰랐던 역사적 사실을 많이 알게 될 것이라고 했다.

속으로 웃음이 나왔다.

모든 영화는 이미 나와 있는 책을 기본으로 제작된다.

영화를 제작하기 위한 시나리오라는 게 있다.

그게 책이다.

그 시나리오는 수많은 책들을 참조해서 만들어졌다.

그러니까 더 많은 정보와 지식을 알려면 책을 읽으면 된다.

책을 읽으면서 자기 나름대로 판단을 하면 된다.

하지만 영화는 그러기에는 약하다.

일단 극장의 좌석에 앉는 순간부터 앞에서 스크린으로 보여주는 대로 볼 수밖에 없다.

책이라면 몇 장 앞으로 되돌려 볼 수도 있고 몇 장 뒤로 되돌려 볼 수도 있다.

답답하면 사전을 들추고 여타의 다른 자료들을 참고하면서 볼 수 있다.

하지만 영화는 오직 앞에 비치는 스크린만 보게 된다.

내 생각은 잠시 내려놓고 영화감독의 생각에 몰입하게 된다.




영화감독의 생각이 나를 압도하는 생각이고 이 사회와 시대에 꼭 필요한 정말 좋은 생각이라면 두 손 들고 환영한다.

하지만 영화감독의 생각이 나의 생각과 부딪히고 이 사회와 시대에 불편함을 주는 생각이라면 굳이 그런 영화를 볼 필요는 없다.

이전에는 몰랐던 새로운 지식을 얻을 수 있다고?

글쎄? 그런 것은 책을 통해서 충분히 얻을 수 있지 않을까?


어떤 사람이 20세기 미술계의 거장인 피카소에게 좋은 작품을 그리기 위해서 여기저기 여행도 다녀야 하지 않느냐고 물었다.

피카소가 워낙 여행을 하지 않으니까 우물 안 개구리처럼 지내지 말라는 의도였을 것이다.

그 말에 대한 피카소의 대답이 걸작이었다.


“글쎄요. 굳이 여기저기 다닐 필요가 있을까요? 저는 머릿속에서 충분히 여행을 다니고 있답니다.”


피카소만큼은 아니지만 나도 머릿속으로 충분히 여행하고 있다.

매일 책을 읽으면서 통해서 충분히 배우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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