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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박은석 Feb 21. 2024

에픽테토스를 알게 된 기쁨

 

책 읽기 운동을 벌이면서 얻은 수확 중의 하나는 이전에 몰랐던 인물을 알게 된 것이다.

진흙 속에 감춰져 있던 진주를 발견한 기쁨 같은 기분이 든다.

그러면서도 이런 인물을 여태까지 나는 왜 몰랐을까 하는 부끄러움도 든다.

노벨문학상을 수상한 작가들이나 세계적인 작품을 쓴 인물들이야 그 이름이라도 얼핏 들어보았으니까 그리 낯설지 않다.

그런데 스토아철학자 에픽테토스 같은 인물은 웬만한 사람들에게는 매우 낯선 이름일 것이다.

소크라테스, 플라톤, 아리스토텔레스 같은 스승들은 누구나 그 이름을 안다.

황제이면서도 철학자였던 마르쿠스 아우렐리우스 황제도 들어봤을 것이다.

네로 황제의 스승이었지만 네로 황제로부터 자결하라는 사형선고를 받고 스스로 생을 마감한 세네카도 우리에게는 익숙한 이름이다.

그런데 에픽테토스는 정말 생소했다.

책을 읽는 중에 사이다처럼 ‘톡’ 쏘듯이 그가 나에게 다가왔다.




노예의 신분으로 지내다가 겨우 자유를 얻어 편안하게 살게 되었나 했는데 황제의 눈 밖에 나서 먼 곳으로 귀양을 떠나 살았던 철학자, 그가 바로 에픽테토스였다.

여러 권의 책을 쓴 철학자들도 많은데 에픽테토스가 쓴 책은 단 한 권도 없다.

그의 가르침을 모아서 제자들이 책 한 권 만들어 준 게 전부다.

그런데 인류 역사 속에서 책 한 권 쓰지 않았으면서도 위대한 스승으로 추앙받는 이들이 많다.

그러고 보니 세계 4대 성인이라 불리는 예수, 공자, 석가, 소크라테스는 모두 그들이 직접 써서 남긴 책이 없다.

제자들의 그들의 가르침을 모아서 책을 만들었을 뿐이다.

예수의 제자들이 복음서를 썼고, 공자의 제자들이 논어를 썼으며, 석가의 제자들이 불경을 썼고, 소크라테스의 제자 플라톤이 <향연>과 <국가> 같은 책을 썼다.

진짜 위대한 인물은 책을 쓰지 않았다.

그런 점에서도 에픽테토스를 위대한 인물이라 할 수 있겠다.




에픽테토스의 글을 처음 대한 순간을 잊지 못한다.

너무 좋았다.

우선 책의 분량이 짧아서 좋았다.

복잡한 말들이 없어서 좋았다.

글이 단순해서 좋았고 가르침이 명쾌해서 좋았다.

글을 읽을 때 마음이 우울하지 않아서 좋았고 깊은 깨달음을 주어서 좋았다.

예를 들면 에픽테토스는 인생을 연회장으로 표현하였다.

실컷 먹고 마시며 춤추고 노래하는 잔치자리이다.

인생은 축제라는 것이다.

그런데 연회장에서는 게걸스럽게 음식을 먹을 수 없다.

서빙하는 사람이 자신에게 올 때까지 기다릴 줄 알아야 하고 품위 있게 음식을 먹을 수 있어야 한다.

자기 테이블에 음식이 안 나왔다고 고함치는 것은 무례한 행동이다.

기다릴 줄 알아야 한다.

조금만 기다리면 밥도 나오고 국도 나오고 반찬도 다 나온다.

에픽테토스의 가르침은 명쾌하다.

인생은 연회장에서의 기다림과 같다는 것이다.

조금만 기다리면 좋은 것이 곧 나온다.




이런 가르침 외에도 에픽테토스는 우리의 인생살이를 주인에게 돌아가는 여정으로 표현했다.

무엇을 잃어버렸을 때 ‘잃어버렸다’라고 하지 말고 ‘그것이 원래 자리로 돌아갔다’라고 생각하라고 했다.

사람에 대해서도 마찬가지다.

이별이든 사별이든 사람이 떠나갔을 때, 나에게서 떠나간 것으로 생각하지 말고 원래 있었던 자리, 가야 할 자리로 ‘돌아갔다’고 생각하라는 것이다.

잃어버렸다거나 떠나간다고 생각하면 너무나 마음이 아프고 억울하고 죄송스러울 것이다.

그러나 원래 있었던 자리로 돌아간다는 것은 슬픈 일이 아니다.

가슴 아픈 일이 아니다.

좋은 일이고 가슴 벅찬 일이다.

인생이 즐거운 잔치이기에 떠나가고 잃어버리는 것도 생각에 따라서는 축제가 될 수 있다.

나에게 이런 깨달음을 안겨준 에픽테토스가 너무 고맙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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