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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박은석 Oct 27. 2020

머리가 굳었다는 말은 핑계일 뿐이다


“나이가 들어서 이제는 머리가 굳어졌나 봐.”

어디선가 많이 들어본 말이다.

많이 듣기도 했지만 우리가 직접 많이 하는 말이다.

좀 비굴한 느낌이 들지만 상대방으로 하여금 측은지심을 불러일으켜주기도 하는 말이다.


여기서 ‘머리’라는 표현은 그 안에 자리하고 있는 ‘뇌’를 말하는 것이다.

그러니까 나이가 들어서 뇌가 굳어졌다는 것인데 이 말은 굉장히 비과학적이다.


우선, 나이가 들었다고 하는 그 기준은 도대체 몇 살인지가 명확하지 않다.

이십 대 때에도 나이가 들었다는 말을 썼고 삼십 대 때에도 썼다.

물론 지금도 종종 쓴다.

나이 어린 사람들 앞에서는 유독 많이 쓰는 말 중의 하나일 것이다.

어른들 앞에서도 “저도 나이 들 만큼 들었어요.”라는 말을 한다.

그러면 어른들은 “에구, 젊은 사람이...”라고 하신다.




얼마 전 어느 할머니의 백수(白壽) 생신잔치에 참석한 적이 있었다.

일백 백(百) 자에서 한 일(一) 자를 뺀 백(白)이다.

그러니까 100세가 아니라 99세 생신잔치이다.

100세 생신은 상수(上壽, 아주 나이가 많음)라고 하는데 요즘은 이런 말을 잘 안 쓰다 보니 알고만 있어도 어디 가서 지식 꽤나 있다는 평을 듣게 된다.


어쨌든 그 생신잔치가 한창 무르익었을 때, 주인공인 할머니께서 자신보다 몇 살 적은 동생에게 “너도 이제 나이가 들었네.”하고 말씀하셨다.

참석한 모든 사람이 그 말을 듣고 크게 웃었다.

그 할머니의 기준대로라면 적어도 90세는 되어야 나이가 들었다고 할 수 있나 보다.

그러니 이제는 어디 가서 나이가 들었다는 말은 가급적 하지 말자.

적어도 90세가 되기 전까지는 말이다.




‘머리가 굳어졌다’는 말도 비과학적이다.

과학자들의 연구에 따르면 우리의 머리는 굳어지지 않는다고 한다.

우리의 뇌는 생명이 다할 때까지 계속 활동하고 변화한다고 한다.

한 시도 쉬지 않는다.

굳어질 틈도 없다.


그리고 머리를 한 대 얻어맞으면 뇌세포가 몇 개씩 죽는다며 뇌세포가 죽으면 새로 생겨나지 않는다고 하는데 이 말도 사실이 아니다.

우리의 뇌세포는 80세가 넘어서도 계속 만들어진다고 한다.

새로 만들어진 세포조직은 말랑말랑할 게 뻔하다.

그러니까 뇌가 굳어서 딱딱해진다는 말은 사실일 리가 없다.


토론토대학교 정신의학과 교수인 노먼 도이지가 쓴 <기적을 부르는 뇌>에 자세히 설명이 되어 있다.

다행이다 싶으면서도 앞으로는 핑곗거리가 없어져버렸으니 뭐라고 해야 할지 모르겠다.




의아하겠지만 60~70대의 사람들의 경우, 일하는 속도는 느릴 수 있지만 일의 생산성은 20대 때만큼 높다고 한다.

20대의 젊은 사람이 일의 속도가 빠르니까 생산성도 당연히 높을 것으로 생각이 든다.

그런데 속도는 빠르더라도 일에 대한 지식이 부족하고 경험이 부족하고 실수도 많아서 결과적으로는 생산성이 그리 높지 않다.

반면에 60~70대는 속도는 느리지만 풍부한 지식과 경험과 숙달된 솜씨로 생산성을 높인다.


노년기에 위대한 업적을 이루는 사람도 있고 노년기까지 일상을 잘 유지하는 사람들도 있다.

세계적인 첼리스트인 파블로 카잘스는 95세 때의 인터뷰에서 여전히 하루 6시간씩 연습하는 이유를 묻는 질문에 “지금도 내가 조금씩 발전하고 있다고 생각하기 때문이지.”라는 대답을 하였다.

이런 사람들 앞에서 머리가 굳었다는 말은 핑계일 뿐이다.

그러니 이제는 나이에 연연하지 말고 그저 열심히 살아야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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