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늘도 시끄러운 세상 속에서 하루를 보냈다.
어렸을 적 동네 아이들과 두 편으로 나뉘어서 총싸움을 하며 놀았던 적이 있는데 그 놀이가 지금도 끝나지 않은 것 같다.
매스컴은 연일 편을 나누는 것을 즐기며 당신은 어느 편이냐고 묻는 것 같다.
우리가 살아갈 길은 오직 하나, 적들을 섬멸해야 한다는 소리 없는 구호가 울려 퍼진다.
자신의 신념에 사로잡힌 사람들은 자신은 하나님의 뜻을 잘 이해하고 있으며, 자신의 행동은 하나님의 뜻을 이루어드리는 것이라고 목청껏 외쳐댄다.
자신의 생각에 동조하지 않는 상대는 적이며, 그 적들 때문에 세상이 혼란스럽게 되었고 경제사정이 안 좋아졌으며 살아가기 힘들게 되었다고 한다.
그러기 때문에 자신의 적인 상대방을 반드시 무찔러야 한다며 열을 올린다.
대학 시절에 결혼한 둘째 누나 집에서 먹고살았다.
그때 누나네 시부모님은 동네 슈퍼마켓을 운영하고 계셨는데 바로 옆집에 슈퍼마켓이 하나 개업했다.
두 가게 사이는 고작 10미터 정도였는데 서로 이웃사촌처럼 친하게 지냈겠는가?
아니다. 살벌했다. 아주. 살벌했다.
옆 가게가 죽어야 내 가게가 산다는 비장한 각오가 묻어나는 것 같았다.
그 동네 사람들이 슈퍼를 이용할 수 있는 주머니 사정이 100이라고 하면 그 100을 사이좋게 나눠 가지면 되는데 결코 그렇지 않았다.
내가 100을 가지든지 아니면 내가 아무것도 못 가지든지 둘 중 하나라는 생각이 한동안 지배했던 것 같다.
흔히 말하는 제로 섬(Zero Sum) 게임이었다.
계산해 보면 합계는 언제나 똑같은데 그 두 가게는 서로 더 많이 가지려고 아웅다웅하였던 것이다.
‘제로 섬’이라는 말을 세상에 선보인 써로(Lester C. Thurow) 교수는 승자의 득점은 언제나 패자가 실점한 만큼 늘어나기 때문에 승자와 패자 사이에는 사느냐 죽느냐의 생존경쟁이 된다고 하였다.
경쟁은 전쟁을 양산시키는데 이 제로 섬 전쟁은 휴전도 없다.
한쪽이 완전히 사라질 때까지 지속되는 살벌한 전쟁이다.
동네 슈퍼마켓 사이에서도 그렇고, 기업과 기업 간에도 그렇고, 국가와 국가 사이에도 그렇다.
인간미는 하나도 남아나지 않는 살벌한 전장만이 펼쳐질 뿐이다.
설령 이 전쟁에서 승자가 되어 모든 것을 독식하게 되었다고 해도 그 승리를 축하하며 박수를 쳐 줄 사람들은 아무도 없다.
벌써 일찌감치 전쟁에서 패배하여 사라지고 없기 때문이다.
거대한 땅에 혼자만의 제국을 이루어가는 외로운 황제가 된 것이다.
아프리카, 아라비아, 중국의 사막은 포식자처럼 해마다 그 넓이를 더해가고 있다.
온갖 초목을 집어삼키며 제로 섬 게임에서 계속 승리를 거머쥐고 있다.
사막을 막기 위해 수많은 노력을 기울여왔지만 아직 성공한 사례는 찾아볼 수 없다.
그런데 그 넓은 사막의 땅에는 생명체들이 찾아가지 않는다.
모두 다 떠나기만 한다.
아라비아의 상인들도 그저 스쳐 지나갈 뿐이다.
사막은 승리했지만 고요함 속에 고독만 감돌뿐이다.
그러나 초목이 어우러진 숲은 아주 작은 땅이라고 할지라도 온갖 생물의 보금자리가 된다.
숲은 혼자서 모든 땅을 삼키려고 하지 않고 뿌리와 뿌리끼리 얽히고, 가지와 가지끼리 어우러진다.
그 결과는 모두가 함께 살아간다.
제로 섬(Zero Sum)의 반대가 되니까 인피니티 섬(Infinity Sum)이라고 해야 할까?
아무튼 합계가 무한대로 커져가는 상생의 공간이 된다.
아! 제로 섬 게임을 그만두고 숲처럼 살고 싶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