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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박은석 Oct 29. 2020

힘 좀 빼라! 그래야 더 잘 살 수 있다


수영을 처음 배울 때 자맥질하며 연거푸 허우적거리는 나를 보면서 주변에서는 힘을 빼라고 했다.

나는 물에 빠져 죽지 않으려고 기를 쓰고 개헤엄이라도 치고 있는데 그래서는 안 된다고 했다.

몸에 힘을 빼면 몸이 물에 뜰 거라면서 그래야 수영을 할 수 있다고 했다.

나는 그게 무슨 말인지 몰랐다.

하지만 어느 순간 정말 나 죽었다 하고 마치 이불속에 들어 눕는 것처럼 몸에 힘을 뺐더니 놀랍게도 몸이 둥둥 떴다.

힘들이지 않고 이 끝에서 저 끝까지 몇 번이나 오갈 수 있었다.


탁구와 테니스를 배울 때도 손목과 어깨에 힘을 빼라는 말을 들었다.

힘을 잔뜩 주어야 세게 칠 수 있다고 생각했는데 그러면 안 된다고 했다.

힘을 주면 타점이 안 맞아서 홈런볼만 나온다고 했다.

오랫동안 연습하면서 차차 몸에 힘이 빠지니 라켓을 휘두르기가 훨씬 수월해졌다.

내가 원하는 곳으로 공을 보내기도 하고 회전을 가할 수도 있었다.




합창반에서 노래를 배울 때 그리고 교회에서 성가대원으로 봉사할 때에는 지휘자로부터 힘을 빼라는 말을 들었다.

이번에는 목소리에 힘을 빼라고 했다.

큰 소리를 내려고 목에 핏대가 설만큼 잔뜩 힘을 주었는데 목만 아프고 노래는 망쳤다.

특히나 합창은 힘을 빼서 옆사람과 소리를 맞춰야 하는 것이었다.


사람들을 만나는 자리에서는 서로 경쟁의식으로 기싸움을 할 때가 있다.

집안 내력을 말하고 학벌을 자랑하고 유명세가 있는 사람을 얼마나 알고 있는지 잔뜩 떠벌인다.

그러다가 나보다 약한 사람을 만났다 싶으면 그 사람 앞에서 목에 잔뜩 힘을 준다.

그러면 옆에서 곧바로 힘 빼라는 말이 날아온다.

뻣뻣하면 부러진다고 한다.

그 말마따나 힘을 잔뜩 주면 사람들이 훅 떠나가고 힘을 빼면 사람들이 삼삼오오 모여든다.




세상을 살아가려면 힘이 있어야 한다. 당연하다.

그러나 힘이 있는 것과 힘을 쓰는 것은 다르다.

충분히 힘이 있다고 하더라도 정도껏 힘을 써야 한다.

너무 힘세게 조이면 볼트도 너트도 나선이 다 마모되고 만다.

문이 안 열린다고 힘으로 열어젖히면 망가진다.

자동판매기에서 100원 거스름돈이 안 나온다고 자판기를 때려 부수는 사람들도 있다.


예전에는 전자제품이 작동을 잘 안 하면 한 대 맞아야 한다며 기계를 때리는 사람들도 참 많았다.

어쩌다가 효과를 보았는지 말 안 듣는 기계는 맞아야 한다는 우스갯소리들을 했다.

시간이 조금만 지나면 안다.

그렇게 두들겨 팼던 기계는 오래가지 못한다.

그 주체할 수 없는 힘 때문에 지금까지 알게 모르게 많은 손해를 입으며 살았다.

힘을 조금 빼고 조절해야 하는데 그러지 못했다.




인류가 청동기 시대를 지나 철기시대로 접어들자 각 나라들마다 서로 힘을 과시하려고 더욱 강한 무기들을 만들어냈다.

자연히 제련소들과 대장간들이 우후죽순 격으로 생겨났다.

그런데 철을 제련하여 무엇을 만들려면 불이 있어야 했고 불을 지피려면 나무가 필요했다.

더 센 힘을 갖기 위해서 더 많은 나무를 베어야 했고 더 넓은 숲을 없애야 했다.


그 결과 무성한 수풀과 울창한 숲이 사라졌고 그에 따라 시냇물도 강물도 말라버렸다.

산짐승과 들짐승 심지어 날짐승까지 떠나버렸다.

그렇게 사막이 되어버린 땅이 생각보다 의외로 많다.


힘이 있어야 살아갈 수 있다고 생각했는데 그 힘 때문에 더 이상 살 수 없게 되고 만 것이다.

적당한 선에서 힘을 빼야 했는데 그러지 못했다.

이제 다시 힘을 빼야 한다.

힘을 빼야 잘 살 수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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