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런 사람이 애국자 아닐까요?

by 박은석


“남자면, 피 끓는 청년이면, 이번 기회를 놓치지 말고 싸움터로 나올 것이다. 한번 나서서 싸울 사명을 느끼지 않는가? 마음이 당길 때까지 주저하는 이유는 무엇인가? 죽음이 무서워서 출정하지 못하는가? 죽음이 무서워서 못 나가겠다는 청년이 있다면 참으로 슬픈 일이다. 딱할 일이다. 그러한 비겁한 사람은 없을 줄 안다. 없어야 할 것이다.”


1943년 11월 18일, 김활란(이화여대 초대 총장)이 매일신보에 기고한 글이다.

다음 달 같은 신문에도 ‘뒷일은 우리 부녀가 지킬 것’이라며 학도병 지원을 맹렬하게 부추기는 글이 실렸다.

이 해 4,385명의 학도병이 태평양전쟁에 동원되었다.

김활란의 일본 이름은 ‘야마기 가쓰란’이다.

황신덕(전 추계학원 이사장), 고황경(전 서울여대 명예총장), 송금선(전 덕성여대 학장), 시인 모윤숙과 노천명 등은 그녀와 더불어 일제의 나팔수 노릇을 했던 여성 교육계 및 문화계의 대표적 인사들이다.




2019년 우수 출판 콘텐츠로 뽑힌 신영란 작가의 <지워지고 잊혀진 여성독립군열전>의 첫머리에 나오는 글이다.

익히 알고 있었지만 그들의 이름이 거론될 때마다 속에서 무언가 울렁거린다.

‘유명한 교육자였는데, 대학총장이었는데, 그들도 그랬구나!’ 하는 한숨이 터져나온다.

<논개>라는 시, <국군은 죽어서 말한다>는 유명한 시를 남긴 모윤숙 씨가 친일파였다니, 그가 노래한 국군은 누구인가 물어보고 싶었다.

‘모가지가 길어서 슬픈 짐승이여’라는 첫 구절이 인상적이었던 시 <사슴>, 그 시를 쓴 시인 노천명.

그 탁월한 글솜씨로 <님의 부르심을 받고서>라는 시를 썼다.

“남아면 군복에 총을 메고 나라 위해 전장에 나감이 소원이리니”로 시작되는 이 시의 ‘나라’는 안타깝게도 대한민국이 아니었다.

조선도 아니었다.

일본이었다.

신영란 작가는 여성만 다루었다.

남성까지 합치면 일제 강점기 친일파는 가히 상상을 초월할 것이다.




“아무리 왜놈들이 강성한들 우리들도 뭉쳐지면 왜놈 잡기 쉬울세라. 아무리 여자인들 나라사랑 모를쏘냐. 아무리 남녀가 유별한들 나라 없이 소용 있나. 우리도 의병하러 나가보세. 의병대를 도와주세. 금수에게 붙잡히면 왜놈 시정 받들쏘냐. 우리 의병 도와주세. 우리나라 성공하면 우리나라 만세로다. 우리 안사람 만만세로다”


1890년대 강원도 춘천 일대의 여성들 사이에서 은밀히 전해지던 <안사람 의병가>이다.

이 노래를 지은 이는 여성독립운동가 윤희순이다.


“조선에서 자란 소년들이여 가슴에 피 용솟음치는 동포여. 울어도 소용없는 눈물을 거두고 결의를 굳게 하여 모두 일어서라. 한을 지우고 성스러운 싸움으로. 필승의 의기가 여기서 핀다.”


열네 살에 조선소년동맹에 가입하여 후에 조선의열단 단장 김원봉의 부인이 된 박차정이 쓴 <조선혁명 간부학교 교가>이다.

4남매 중 3명이 독립운동가의 길을 걸은 가문이다.




임산부의 몸으로 평안남도 도청에 폭탄을 던지는 특명을 감행하다가 붙잡힌 안경신.

이범석 장군의 부인 쌍권총의 여전사 김마리아.

서대문형무소 8호실의 방장이었던 큰언니 어윤희.

그 방에 함께 있었던 임정애, 권애라, 심명철, 유관순, 그리고 그들의 뒤를 따라 그 방에 머물렀던 숱하게 많은 여성들.


“사람이 세상에 나서 나라가 없고 보면 짐승만도 못합니다. 개도 죽으면 임자가 와서 개 값을 받으러 오는데, 나라 없는 백성은 이 사람 저 사람이 때려죽여도 ‘왜 죽였냐’는 말 한마디 없습니다.”


1961년 중앙여학교에서 3.1만세 기념 강연에서 어윤희가 했던 말이다.

조선 최초의 여성 비행사가 된 권기옥.

그녀는 망국의 한을 품고 비행사가 되었다.

그녀의 꿈은 비행기만 한 대 있으면 조선총독부를 폭파하겠다는 것이었다.

독립운동에 남녀가 따로 있냐고 했던 그녀들의 목소리가 쟁쟁하게 들린다.

이런 사람이 애국자 아니겠는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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