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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박은석 Mar 16. 2024

정신지체장애인들로부터 응원을 받은 날


뻐근한 몸을 좀 풀 겸해서 실내 테니스 연습장을 찾았다.

카드를 갖다 대면 60개의 공이 튀어나온다.

무인 시스템으로 운영되는 곳이다.

60개의 공을 치고 또 60개를 치고 또 60개를 치면 얼굴에 땀이 흐른다.

나름 괜찮다.

지켜보는 사람도 없어서 좋다.

코치라도 있으면 눈치가 보일 텐데 무인 시스템이니까 한산할 때 잠깐 들렀다가 운동하고 간다.

오늘은 아무도 없었다.

여유 있게 몸을 풀어보려고 막 신발을 신으려고 하는 순간 한 무리의 사람들이 문을 열고 들어왔다.

‘어!’ 깜짝 놀랐다.

장애인 예닐곱 명이 들어온 것이다.

그들을 인솔한 교사도 3명이 이었다.

종종 이곳에 들르는지 그들은 곧바로 라켓을 들고 코트로 들어갔다.

나름대로 정해진 순서가 있었는지 한 명이 60개의 공을 치면 그다음 사람이 라켓을 들고 코트로 들어갔다.

바닥에 굴러다니는 공들도 깔끔하게 정리해서 다음 선수가 운동할 수 있게 했다.




언뜻 보기에 자폐증을 앓고 있는 이들인 것 같았다.

불현듯 장애인들과 함께 했었던 시간들이 떠올랐다.

서울에 올라온 스무 살 때 우여곡절 끝에 선배가 다니던 교회에 가게 되었다.

개척한 지 얼마 안 된 교회였는데 교인이 꽤 많이 모였었다.

시간은 많고 할 일은 없었던 나에게 장애인부서의 보조교사로 봉사해 보면 어떻겠냐는 제안이 들어왔다.

나에게 주어진 일은 장애인 가정을 방문해서 그 친구들을 데리고 교회에 오는 일과 예배 시간에 그들과 함께 놀아주는 것이었다.

그때 처음 자폐증을 앓고 있는 아이를 만났다.

그전까지는 장애인이라고 하면 다운증후군을 떠올렸다.

고향에서 우리 옆집에 다운증후군 형님이 있었기 때문일 것이다.

스무 살 때 내가 맞닥뜨렸던 장애인은 종잡을 수가 없었다.

갑자기 소리를 지르기도 하고 울기도 하다가 또 먼 산 바라보듯이 멍하니 있기도 했다.

나로서는 새로운 세상을 만난 셈이었다.




개척교회여서 그랬는지 각 가정에서 장애인들을 교회로 보내지 않아서 그랬는지 모르겠지만 장애인부서는 그리 오래가지 못했다.

부서는 없어졌지만 나로서는 좋은 추억 하나 얻은 셈이었다.

대학 4년과 2년 넘는 군복무를 마친 후에 신학대학원에 진학을 했다.

나처럼 대학을 마친 후 곧바로 들어온 사람들도 있었고 직장을 퇴직한 후에 입학한 분들도 있었다.

단순히 신학을 공부하고 싶어서 온 사람도 있었고 목사나 선교사가 되기 위한 과정으로 온 사라도 있었다.

그중에 벌써 20년 넘게 장애인 복지시설을 운영하고 있던 분이 있었다.

그 복지시설에서 장애인들과 함께 예배를 드렸다.

예배를 위해서 목사님이 필요했는데 본인이 직접 목사가 되기로 했던 것이다.

신학대학원은 3년 과정이었기에 우리는 그 긴 시간 동안 함께 공부를 했다.

그 형님은 나로서는 감히 따라잡을 수 없는 분이었다.

마음이 아주 깨끗한 분이었다.




그 형님이 한번은 도움을 요청했다.

매주 토요일에 장애인들을 데리고 목욕탕에 가는데 목욕을 도와달라는 것이었다.

여러 명의 학우들이 선뜻 돕겠다고 했고 나도 얼떨결에 딸려 들어갔다.

자폐증을 앓고 있는 장애인들이었다.

1년 가까운 시간 동안 목욕 봉사를 했는데 장애인들을 목욕시키는 일도 만만한 일이 아니었다.

장애인들은 자기 힘으로 살아갈 수가 없다.

반드시 누군가 도와주어야만 한다.

가정에서 부모가, 형제가 도움을 줄 수 있겠지만 그것도 한계가 있다.

전문적인 지식을 갖춘 사람들과 특화된 시설을 갖춘 곳에 맡기는 게 더 나을 것이다.

그러니까 오늘처럼 테니스장에도 올 수 있는 것이다.

집 식구들이라면 테니스 같은 운동은 상상도 못 했을 것이다.

날아오는 공들을 열심히 치고 있었는데 뒤에서 그들이 박수도 치고 함성도 질러주었다.

형편없는 실력인데 오늘은 누군가로부터 엄청난 응원을 받은 날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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