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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박은석 Mar 18. 2024

인생은 실험 대상이 아니다


2006년경에 있었던 일인데 영국 웨일스의 뱅거대학 연구팀이 기후변화에 대한 조사를 하다가 아이슬란드의 바닷속에서 조개 한 마리를 발견했다.

연구팀원 중에 조개에 대한 지식이 있던 연구원이 있었는지 모르겠지만 아무래도 그 조개가 꽤 신기해 보였던 것 같다.

평상시에 보았던 조개와는 좀 달라 보였던 것 같다.

한눈에 봐도 나잇살 좀 먹은 조개같이 보였던 것이다.

연구팀은 그 조개를 채취해서 실험실로 가져왔다.

조개의 껍질 안팎에는 ‘생장선’이라는 줄무늬가 있다.

생장선을 보면 조개의 나이가 대략 몇 살인지 계산할 수 있다.

연구팀은 조개의 겉껍질을 보고서 그 조개가 대략 405년 정도 되었을 것이라고 판단했다.

더 정확한 나이를 알려면 조개의 껍질을 열어서 그 안을 살펴봐야 했다.

그래서 연구팀은 조개의 껍질을 열었다.

그리고 정밀한 측정을 해서 조개의 나이를 알아냈다.

조개의 나이는 무려 507살이었다.




507살이라면 그 조개가 태어났을 때는 1499년이었다.

그때 한반도는 연산군이 폭정을 휘두를 때였고 이탈리아 피렌체 출신의 모험가인 아메리고 베스푸치는 아시아로 가는 새로운 바닷길을 찾아 떠났다.

그가 발견한 땅을 그는 죽을 때까지 아시아라고 생각했지만 후대의 사람들은 그의 이름을 따라서 그 땅의 이름을 ‘아메리카’라고 불렀다.

그만큼 까마득한 옛날에 태어난 조개가 21세기까지 살아있었다는 사실이 놀랍다.

깊은 바닷속에 조용히 숨어 지내서 그랬는지 조개는 평화롭게 잘살고 있었을 것이다.

그런데 어느 날 연구자라고 불리는 사람들에게 붙잡혔고 바닷물에서 끌어올려진 후 전깃불 환하게 밝혀진 실험실로 보내졌다.

그곳에서 사람들의 손에 만져지고 속살까지 까발려졌다.

사람들은 신기해하였지만 조개는 얼마나 두려웠을까?

얼마나 창피하고 속이 상했을까?

결국 그 조개는 얼마 지나지 않아 죽고 말았다.




죽은 조개를 보면서도 사람들은 그 조개를 잘 관찰하면 500년 전의 지구 환경을 추측해 볼 수 있다며 흥분했다.

그전까지의 기록으로는 1982년에 미국 근해에서 잡힌 220살 된 북극권 대합조개가 최고령 생물로 기네스북에 올라 있었다.

그런데 507살 조개가 잡히는 바람에 최고령 생물의 기록이 달라지게 되었다.

그 조개를 잘 연구하면 장수의 비결을 밝힐 수 있을 것이며 불로장생의 의약품을 개발할 수 있을 것이라는 이야기를 하는 사람들도 있었다.

조개의 소식을 접한 네티즌들은 ‘507살 된 조개를 먹으면 어떤 맛이 날까?’라는 궁금증을 쏟아내기도 했다.

사람들은 각자 자신의 생각으로 조개를 재단했다.

이렇게도 자르고 저렇게도 잘랐다.

그 누구도 조개의 감정 상태를 눈여겨보지 않았고 조개의 생명을 귀하게 여기지도 않았다.

조개는 마음대로 다뤄도 되는 줄 알았다.

그렇게 난도질당하는 사이에 조개는 죽고 말았다.     




지금에 와서 근 20년 전의 일을 들추는 것이 무슨 의미냐고 말하는 사람들이 있을 수 있다.

나의 대답은 간단하다.

인간은 망각의 동물이기 때문이다.

과거에 저지른 잘못을 반성하기도 하지만 그보다도 잊어버리기를 더 잘하기 때문이다.

나의 호기심을 달래기 위해서 다른 생물의 생명을 빼앗아버리는 일은 결코 좋은 일이라고 할 수 없다.

더군다나 나의 더 나은 삶을 위해서 다른 사람의 삶을 희생하게 만드는 일은 절대로 하면 안 되는 일이다.

그런데 사람 살아가는 세상을 보면 그런 일이 비일비재하게 일어난다.

모든 생명체는 그 나름대로의 존재 의미가 있고 존재 가치가 있다.

생명은 실험의 대상이 아니라 존중의 대상이다.

선거철이어서 그런지 사방에서 여러 소리들이 들린다.

이렇게 하면 잘 살 수 있고 자기를 믿으면 더 나은 삶을 살 수 있다고 하는 소리들이다.

그들에게 한마디 한다.


“인생은 실험 대상이 아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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