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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박은석 Mar 08. 2024

딸아이가 집에 돌아왔다!


딸아이가 집에 돌아왔다! 지난 월요일에 집을 나갔었는데 목요일 저녁에 왔다.

스무 살 아니, 만 열여덟 살이 되어 자기만의 둥지를 찾아 나가게 되었다.

집에 그냥 있어도 되는데 한번 나가서 지내고 싶다고 했다.

보내고 싶지 않았는데 언젠가는 보내야 하기 때문에 우리 부부도 보내는 연습이 필요하다고 생각했다.

지난주에는 바리바리 짐을 싸서 딸아이가 넉 달 동안 살 집에 갖다 줬다.

대학 기숙사이다.

기숙사가 잘 갖춰져 있어서 신입생들의 경우는 전원 기숙사 생활이 가능하다고 한다.

내 스무 살 때 생각이 났다.

지방에서 올라온 학생들은 거처할 집이 필요했다.

그때는 원룸 개념이 없었으니 하숙과 자취 그리고 친척 집에 얹혀사는 방법 중 하나를 선택해야 했다.

하숙은 한 달에 20-30만원, 자취는 10-15만원 정도 했다.

당시로서는 엄청난 비용이었다.

수도권에서 살던 친구들은 2시간이 걸려도 전철을 타고 통학했다.




나처럼 먼 지방에서 올라와서 서울에 있는 학교에 다닌다는 것은 엄청난 비용이 들었다.

넉넉하지 않은 집안 형편이었기에 다달이 부모님께 용돈을 보내달라고 하기가 정말 미안했다.

우리 학교에도 기숙사가 있으면 부모님의 부담을 조금이라도 덜어드릴 수 있었을 텐데 내가 다닌 학교는 기숙사가 없었다.

그래도 다행스럽게 먼저 서울에 올라와서 결혼생활을 하던 누나가 있었다.

누나로서는 큰 부담이었겠지만 그때는 달리 방법이 없었다.

나 때는 그랬는데 내 딸의 경우는 달랐다.

학교까지 버스를 타고 갈 수도 있고 전철을 타고 살 수도 있다.

시간은 한 시간이 조금 넘게 걸린다.

그 정도면 집에서 다녀도 될 것 같은데 딸아이는 굳이 기숙사 생활을 해 보겠다는 것이다.

어쩌겠는가? 

일단 한 학기만이라도 기숙사에 들어가 보라고 했다.

그렇게 해서 딸아이는 이십 년 동안 지냈던 부모 곁을 떠나 자기만의 둥지로 날아갔다.




우리 부부와 딸, 아들이 알콩달콩 살던 집이었는데 딸아이가 빠지니 휑하니 큰 구멍이 생겨버렸다.

아침이 되면 딸아이가 잠에서 깨었는지 궁금했다.

아침밥은 뭘 먹었는지 궁금했다.

수업 시간표를 다운받아서 틈만 나면 들여다보았다.

우리 때는 입학식 전에 2박 3일 오리엔테이션을 하면서 친구도 사귀었는데 딸아이의 때는 그런 문화가 아니다.

그래서 아직 친구가 없다.

첫날 터덜터덜 걸어가면서 '외톨이야'라고 쓴 인스타그램 페이지를 봤다.

점심밥도 혼자 먹었다고 했다.

SNS 게시판에 비슷한 처지의 아이들이 글을 올렸다고 한다.

어떤 친구는 자신의 별명이 ‘개똥벌레’라고 했다.

이유인즉슨, ‘친구가 없네’였다.

아내와 함께 그 글을 보면서 웃었다.

웃으면서도 내 딸아이가 그 심정일 것을 생각하니 마음이 짠했다.

첫 수업은 어땠는지, 학과 친구들은 어떤지, 동아리는 정했는지, 미팅은 언제쯤 하게 될지 모든 게 궁금했다.




딸아이는 일월화수요일을 보내고 목요일 저녁에 집에 온 것이다.

기껏해야 4일인데 우리에게는 그 4일의 시간이 엄청 길게만 느껴졌다.

어쨌든 시간은 지나갔고 드디어 딸아이가 집에 오는 날이 되었다.

아내는 딸아이가 먹을 음식을 준비하느라 장을 보고 방도 정리하고 부산을 떨었던 것 같다.

나는 마음만 얹어놨다.

퇴근 후 곧바로 집으로 왔다.

현관문을 열었는데 아내가 달려 나왔다.

딸아이가 온 줄 알았나 보다.

남편이어서 실망이었을까?

잠시 후 ‘띠띠띠띠’ 현관문 비밀번호 누르는 소리가 들렸다.

“딸이다!” 아내의 외침과 함께 현관문이 열리고 세상에서 제일 예쁜 우리 딸이 들어왔다! 딸아이를 껴안고 얼굴을 비비고 난리 부르스를 췄다.

누가 보면 몇 년 만에 만난 줄 알겠다.

드디어 빈 둥지가 꽉 채워진 기분이 들었다.

역시 우리 집은 나와 아내, 딸과 아들 넷이 다 있어야 한다.

이 그림이 깨지지 말기를 간절히 바랐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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