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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박은석 Mar 28. 2024

풀꽃 시인 나태주 선생님을 생각하며

나태주 선생의 시 <조그만 시인>을 마주하며...


남자아이들은 어려서부터 힘자랑을 한다.

힘의 세기에 따라서 서열이 지어진다.

힘이 센 아이는 우쭐대고 힘이 약한 아이는 주눅이 든다.

부모들은 자기 아들이 주눅 들지 않기를 바라는 마음으로 태권도 학원에도 보내고 축구교실에도 보내지만 거기서도 힘센 아이가 있고 약한 아이가 있다.

자기 아들이 힘이 약하다는 사실을 알게 되는 순간 부모들은 걱정한다.

‘저 녀석이 앞으로 세상을 헤쳐나갈 때 얼마나 힘들까?’ 그러나 그건 부모의 기우이다.

하나님은 모든 아이들에게 그 아이만의 강점을 선물로 주셨다.

그 강점을 발견하고 개발하면 그 분야에서만큼은 가장 힘센 아이가 될 수 있다.

남들이 잘하는 일이니까 나도 잘해야 한다는 강박증은 버리는 게 낫다.

남들이 어떤 일을 잘하든 말든 그건 내가 신경 쓸 바가 아니고 나는 내가 잘하는 일을 하면 된다.

우리 아이들이 그런 마음으로 자신의 인생을 살아갔으면 좋겠다.




내가 아는 어떤 선생님이 있다.

물론 그 선생님은 나를 모른다.

나는 책을 통해서 그 선생님을 알았을 뿐이다.

아직까지 한 번도 그 선생님을 뵌 적도 없고 말씀을 나눠본 적도 없다.

그 선생님 댁을 찾아간 적은 있지만 가는 날이 장날이라고 그날 그 시간에 그 선생님은 출타하고 안 계셨다.

그래도 나는 그 선생님을 안다고 말한다.

책에서 그 선생님을 만났기 때문이다.

이처럼 나는 책을 통해서 누군가를 만난다는 장점을 가지고 있다.

내 또래의 사람들에 비해서 내가 굉장히 많은 사람을 만날 것이다.

왜냐하면 내 또래의 사람들에 비해서 내가 훨씬 많은 책을 읽고 있기 때문이다.

어쨌든 책을 통해서 만난 그 선생님은 어려서 무척 약골이었다.

친구들 사이에서 한심한 아이, 만만한 아이로 통했다.

동네 아이들에게 불려 다녔다.

아이들이 심부름도 시켰고 함부로 따돌리기도 했다.

요즘식으로 표현한다면 꼬봉이고 왕따였다.




동네에서 가장 높은 곳에 있는 집이었다.

아이들은 그 집을 ‘꼬작집’이라고 놀려댔다.

그 허름한 집에서 젊은 외할머니랑 함께 살았다.

남들처럼 엄마 아빠의 그늘 아래서 지낸 게 아니었다.

친구들에게 얻어맞는 날이면 외할머니가 그 친구네 집에 가서 따지기도 하고 하소연을 하기도 했다.

성씨가 ‘나’ 씨였기에 아이들로부터 ‘날타리’라는 별명을 얻었다.

다른 아이들보다 머리가 컸기에 아이들은 선생님에게 ‘대갈장군’이라고도 했고 ‘가분수’라는 별명을 붙여서 놀려대기도 했다.

이렇게 만만하고 한심하고 보잘것없는 아이였으니까 아무짝에도 쓸모가 없었을까? 그렇지 않다.

하나님은 그 아이에게 남들이 갖고 있지 않은 특별한 선물을 주셨다.

그건 생각하는 마음이었다.

오늘보다 내일을 꿈꾸고 먼 것을 그리워하는 마음이었다.

혼자서 책을 읽고 그림을 그리는 외로움을 주셨고 사람을 좋아할 줄 아는 능력을 선물로 주셨다.




초등학교, 중학교, 고등학교를 졸업하고 또 대학을 졸업하고서 선생님은 어느 시골 학교의 선생님이 되셨다.

가장 작은 아이들, 가장 약한 아이들을 가르치는 초등학교 선생님이 되셨다.

그 아이들은 선생님의 가르침을 받으면서 점점 큰아이가 되었고 힘센 아이가 되었다.

아이들을 가르치러 오가던 길가에는 버려진 풀꽃들이 피어나 있었다.

아무도 눈여겨보지 않았지만 선생님의 눈에는 그 풀꽃들이 들어왔다.

약한 사람의 눈에만 보이는 풀꽃이었던가 보다.

오랫동안 그 풀꽃들을 바라보았다.

자세히 보았다.

그러자 풀꽃이 예쁘고 사랑스러웠다.

풀꽃의 모습이 마치 선생님의 모습 같았고 세상의 모든 약한 사람의 모습처럼 보였다.

그래서 선생님은 풀꽃을 노래하기 시작하셨다.

이제 더 이상 선생님을 꼬작집 아이, 날타리, 대갈장군, 가분수로 부르는 사람은 없다.

사람들은 선생님을 ‘풀꽃 시인’이라 부른다.

나태주 선생이라 부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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