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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박은석 Mar 29. 2024

나의 꿈과 하늘의 꿈


긴 시간 동안 나는 꿈꾸는 사람이었다.

열 살 때는 꿈에 부풀었다.

막연하였지만 뭐든 다 할 수 있을 것 같았다.

육군 장군이 되는 것을 꿈꾸었다.

현미경을 들여다보면서 과학자가 되는 것도 꿈꾸었다.

먼 나라의 국경에서 터벅터벅 걸어가는 순례자를 꿈꾸기도 했다.

가까운 미래에 대해서는 스카이대학교에 들어가는 꿈을 꾸었다.

일기장에 어느 대학교 어느 학과에 가겠다는 꿈을 적기도 했다.

스무 살 때도 꿈꾸는 일은 계속 이어졌다.

하지만 열 살 때의 꿈과는 색이 달랐다.

열 살 때의 꿈이 무지갯빛이었다면 스무 살 때의 꿈은 잿빛이었다.

멀리 있는 꿈은 분명히 보이는데 그 꿈까지 나아가는 다리가 희미했다.

이 길을 걸어가면 닿을 것 같은데 닿을 듯 닿을 듯하면서도 닿지 않을 것 같기도 했다.

이 길 말고 다른 길은 없을까 고민도 되었다.

꿈까지 닿을 수 있는 확실한 길을 발견하는 것이 이십 대의 일이라 생각했다.




서른 살 때는 꿈이 흐릿해지기 시작했다.

내가 서 있는 곳이 어디인지 가늠이 잘 안될 때가 많았다.

산 아래 있으면 정상이 또렷이 보이는데 산속에 들어가면 정상이 안 보이는 것처럼 내가 꿈속에 들어와 있는지, 꿈에서 이탈해 있는지 알다가도 모를 때가 많았다.

그 불확실함 속에서 내가 할 수 있는 일은 가던 길을 계속 가는 것밖에 없었다.

짙은 안갯속에 빠져든 것 같았다.

방향 감각을 잃었을 때는 한 가지 생각밖에 안 난다.

빨리 거기서 빠져나오는 생각이다.

그때가 그랬다.

꿈을 생각할 겨를도 없었다.

무엇엔가 중독된 듯이 빠져들었다.

나에게 맡겨진 일에는 미친 듯이 달려들었다.

직장에서도 그랬고 가정에서도 그랬다.

일중독자라는 말이 좋게 들렸다.

열심히 일하면 좋은 결과가 나올 줄 알았다.

시간이 날 때마다 아이들을 데리고 여기저기 싸돌아 다녔다.

그렇게 하는 게 좋은 남편 좋은 아빠가 되는 길인 줄 알았다.




마흔 살이 되자 꿈을 생각하는 시간이 부쩍 줄어들었다.

산 정상에 오르면 더 이상 정상을 꿈꾸지 않는다.

그곳을 몇 걸음 걸어볼 뿐이다.

정상에 올랐다는 환희는 금세 사라진다.

고작 이 짧은 감격을 누리기 위해서 그 많은 시간 동안 달려왔었나 하는 허탈감이 들기도 했다.

내가 꿈꾸던 정상이 여기가 아닌 것 같기도 했다.

이럴 수는 없다고 생각이 들었기 때문이다.

내 눈앞에 더 높은 봉우리가 보이기도 했다.

그곳을 향해 걸어가는 사람들도 많았다.

나도 그 대열에 끼어들어야 할 것 같기도 했다.

하지만 이곳을 떠나 그곳으로 가기에는 생각해야 할 것들이 많았다.

그곳이라고 해서 여기보다 훨씬 낫다는 보장을 할 수도 없었다.

좋게 보인다고 해서 실제로 좋은 것도 아니라는 사실을 많이 듣고 보았기 때문이다.

여기도 나름대로 괜찮은 곳인데 여기를 버리고 떠나기에는 아쉬움도 컸다.

그렇게 우물쭈물 마흔이 지났다.




쉰 살이 되자 눈을 감고 꿈을 꾸기보다 눈을 뜨고 하늘을 보는 시간이 많아졌다.

하늘은 언제나 보였다.

열 살, 스무 살, 서른 살 때도, 산 아래서도, 산속에서도.

하지만 산 아래서 올려다보던 하늘과 산 위에서 올려다보는 하늘은 달랐다.

산 아래서는 산봉우리들 너머의 하늘이었지만 산 위에서는 바로 내 눈앞에 하늘이 있다.

나의 꿈이 산 정상에 오르는 것이었을까 아니면 눈앞의 장애물들을 모두 걷어내고 오로지 하늘만 쳐다보는 것이었을까?

문득 ‘하늘은 나에게 무슨 꿈을 갖고 있었을까?’라는 생각이 들었다.

열 살, 스무 살, 서른 살, 마흔 살, 쉰 살이 된 지금까지 하늘은 나에게 어떤 꿈을 갖고 있었을까?

나는 높은 곳에 올라 하늘 가까이 가는 것을 꿈이라고 했다.

그러나 하늘은 언제나 내 머리 위에서 나를 품고 있었다.

어쩌면 그것이 하늘의 꿈이 아니었을까?

내가 하늘의 품 안에서 하루하루 살아가는 것 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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