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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박은석 May 09. 2024

가장 위대한 사람은 가장 가까이 있다

안톤 체호프의 <베짱이>를 읽고


러시아의 문호 안톤 체호프의 <베짱이>라는 단편소설이 있다.

주인공인 올가 이바노브나는 유명해지고 싶은 마음이 많은 여인이다.

그녀는 연극배우, 음악가, 화가, 귀족들과 파티를 일삼으며 살았다.

예술과 문학을 사랑하는 척하며 자신을 유명인사들과 동급인 것처럼 생각하였다.

어느 날 그녀의 아버지가 큰 병에 걸렸는데 마침 아버지와 같은 병원에서 일하고 있던 드이모프라는 의사가 헌신적으로 진료를 해주었다.

그녀의 아버지는 건강을 회복하지 못하고 돌아가셨지만 그 과정에서 드이모프의 친절한 모습에 반한 이바노브나는 드이모프와 결혼하게 되었다.

신혼은 꿈만 같았다.

행복했다.

하지만 어느 순간부터 그녀에게 드이모프에 대한 무료함이 찾아왔다.

드이모프는 유명하지도 않았고 돈을 많이 벌지도 못했다.

이바노브나는 그림을 배우러 간다는 구실로 시골 별장으로 떠났고 나름 유명하다고 하는 화가와 밀회를 즐겼다.




이바노브나의 불륜은 오래가지 않았다.

유혹은 사탕발림처럼 달콤했지만 그 후에는 쓰라린 눈물과 아픔만 남았다.

다시 집으로 돌아온 이바노브나를 남편인 드이모프는 따뜻하게 맞아주었다.

이런 천사 같은 사람에게 마음을 다 털어놓고 용서를 구해야겠다는 생각이 잠시 들었지만 이바노브나는 그렇게 하지 못했다.

하지만 남편과의 관계에 어색한 기운이 들기는 했다.

그즈음에 남편은 의학 공부의 진도가 어떻게 얼마나 진척되었는지, 자신의 연구 결과가 어떤지, 그리고 박사학위 논문이 통과되었다는 말을 들려주었다.

이바노브나에게는 전혀 관심이 없는 말들이었다.

남편은 음악도 미술도 문학도 모르고 허구한 날 고리타분하게 연구만 하는 답답한 사람으로 여겨졌다.

이바노브나는 또 다른 유명인사들을 찾아 나섰고 그들과 파티를 즐겼다.

그들을 만나서 사귀다 보면 자신의 남편은 정말로 형편없고 초라하게만 여겨졌다.




그러던 어느 날이었다.

남편이 실험을 하다가 디프테리아균에 감염되고 말았다.

남편의 친구가 달려와서 치료를 하려고 했지만 이미 늦은 상태였다.

그때 남편의 친구가 들려주는 말을 들은 이바노브나는 깜짝 놀랐다.

드이모프는 곧 대단한 학자가 될 사람이었으며 자기들과는 비교할 수도 없는 인재였다고 했다.

또한 그가 얼마나 고상한 인품을 지녔는지, 얼마나 맑은 영혼의 소유자였는지도 이야기했다.

그가 밤낮 연구하고 번역 일을 해서 번 돈으로 이바노브나가 생활할 수 있었다는 말도 곁들였다.

이바노브나는 부끄러웠다.

친정아버지를 돌보아 주었던 드이모프의 친절함이 떠올랐다.

그때 친정아버지도 드이모프를 무척 좋아했었다.

자신은 남편이 너무나 평범한 사람 같아서 별 볼 일 없는 사람이라고 여겼는데 사실은 자신의 남편이야말로 대단한 사람이었다.

그녀가 남편의 진면목을 깨달았을 때는 이미 때가 늦어버렸다.




올가 이바노브나는 베짱이처럼 눈에 띄는 화려한 삶을 살고 싶었다.

그런 사람들 곁에 있으면 자연히 자신도 눈에 띄는 사람이 될 것이라고 생각했다.

그들처럼 그림도 그리고 음악도 하고 문학 토론도 하면 유명한 인물이 될 것 같았다.

개미처럼 묵묵히 일만 하는 남편이 맘에 들지 않았다.

높은 직급에 오르지도 못하고 돈을 많이 벌지도 못하는 남편이 답답하게만 보였다.

평범하게 살아가는 일상이 지루했다.

미술, 음악, 문학을 모르는 남편과는 대화가 되지 않았다.

세상에서 자기 남편이 제일 무능한 사람처럼 보였을 것이다.

남편의 죽음을 앞두고서야 알았다.

매일 반복되는 평범한 일이 제일 위대한 일이라는 사실을.

화려한 말솜씨가 없어도 따뜻한 미소와 성실한 손길이야 말로 제일 위대한 실력이라는 사실을.

가장 귀한 보물은 나만 모르고 있었다는 사실을.

가장 위대한 사람은 가장 가까이 있다는 사실을 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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