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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박은석 May 13. 2024

노아는 방주 안이 좋았을까 밖이 좋았을까?

성경이야기 11


비가 그쳤고 물이 줄어들었다.

물 위를 떠다니던 방주는 일찌감치 아라랏산에 머물렀다.

아직 홍수는 진행 중이었다.

방주에서 나올 수 없었다.

물이 얼마나 줄어들었는지 확인하려고 노아는 까마귀를 내보냈다.

비둘기도 내보내 보았다.

첫 번째 비둘기는 발 붙일 곳을 찾지 못해서 돌아왔다.

7일 후에 또 다른 비둘기를 보냈는데 그 녀석은 감람나무 새 잎사귀를 입에 물고 왔다.

1년 동안의 홍수로 모든 것이 다 끝난 줄 알았지만 홍수 후에도 풀은 돋았고 꽃은 피었으며 나무는 자랐다.

생명은 강하다.

쉽게 죽지 않고 쉽게 끝나지 않는다.

노아 600세 둘째 달 열이렛날에 홍수가 시작되었다.

노아와 동물들은 홍수가 시작되기 7일 전에 방주에 들어갔다.

노아 601세 둘째 달 스무이렛날에 땅이 말랐다.

이제 방주 밖으로 나올 때가 되었다.

하나님이 노아에게 방주 밖으로 나가라고 하셨다.

그 말씀대로 노아가 밖으로 나왔다.




사람은 땅에 발을 붙여야 살 수 있다.

땅에서 떨어지면 불안해진다.

1년 동안 물 위에 떠다녔던 노아는 얼마나 불안했을까?

방주 안에 있던 짐승들은 또 얼마나 불안했을까?

방주 안에서 지낸 1년 동안 큰 병에 걸리지도 않고 죽지도 않았다는 것은 큰 기적이었다.

드디어 방주의 문이 열렸다.

밖으로 나오게 된 노아의 가족들은 어떤 표정을 지었을까?

기쁨에 겨운 표정이었을까?

드보르 작의 교향곡 9번 <신세계로부터>를 들으며 생각해 보았다.

유럽에서 범선을 타고 아메리카 대륙으로 떠나던 시대였을 것이다.

대서양 한복판을 지날 때 풍랑을 만나서 침몰한 배들도 많았을 것이다.

뱃멀미로 고생하고 병에 걸려서 죽다가 살아난 사람도 많았을 것이다.

이제나저제나 눈 빼고 바라보았는데 멀리서 육지가 보였다.

“육지다!” 외치는 소리가 뱃전에서부터 울려 퍼졌다.

기쁨에 겨워 얼싸안고 박수를 쳤을 것이다.

신세계 교향곡은 그렇다.




노아는 어땠을까?

“육지다!” 외쳤을까?

그렇지 않았을 것 같다.

노아가 방주의 문을 열고 바라본 육지는 너무 황량한 땅이었다.

풀은 돋아나 있었겠지만 그 사이를 돌아다니는 생명체는 보이지 않았다.

당연히 사람도 없었다.

에덴동산의 아담은 창조되었을 때부터 자기 혼자였다.

그러다가 하와가 새겨서 둘이 되었고 아들딸들이 태어나서 셋, 넷, 다섯이 되었다.

에덴동산에서의 아담은 항상 플러스의 삶이었으니까 없어지는 것, 결핍의 아픔을 몰랐을 것이다.

하지만 노아가 맞닥뜨린 방주 밖의 세계는 에덴동산과는 달랐다.

거기에는 모든 게 마이너스 같았다.

없는 게 너무 많았다.

이전에는 땅 위에 사람도 많았고 동물들도 많았는데 지금은 아무것도 없다.

다 잃어버렸다.

그게 노아가 맞닥뜨린 방주 밖 세상이다.

‘여기서 앞으로 어떻게 살아야 하나?’하는 마음이 들었을 것이다.

이제 무엇을 해야 할지 막막하기만 했을 것이다.




노아는 하루 종일 돌아다니며 집을 지을 자리를 정하고 농사지을 땅도 보았을 것이다.

세상 모든 땅이 다 노아의 땅이 되었다.

좋았을까?

전혀 그러지 않았을 것이다.

해가 지고 밤이 찾아왔을 때 노아는 어디에서 잠을 잤을까?

다시 방주 안으로 들어와서 잤을 것이다.

1년 동안 지긋지긋하다고 여겼던 방주 안의 그 자리가 사실은 가장 편안하고 안락한 자리였다.

방주 밖의 넓디넓은 땅보다 방주 안의 좁디좁은 자리가 더 좋았을 것이다.

구상 시인이 노래했다.


“반갑고 고맙고 기쁘다. 

앉은자리가 꽃자리니라.

..... 

네가 시방 가시방석처럼 여기는

너의 앉은 그 자리가

꽃자리니라.” 


유럽에서는 아메리카에 가면 좋을 줄 알았을 텐데 아메리카에 가보니 유럽땅이 그리웠을 것이다.

방주 안에서는 밖으로 나가고 싶었을 텐데 밖에 나가고 나니 방주 안이 그리웠을 것이다.

지금 자기가 있는 곳이 가장 좋은 곳인데 그걸 모르고 살아가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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