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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박은석 May 18. 2024

천 개의 가면이 나에게 있다


“정말 대단하시네요!”라고 칭찬을 하면 “아니에요. 운이 좋았을 뿐이에요. 주변에서 모두가 도와주셔서 된 거예요. 저는 아무것도 한 게 없어요.”라는 식으로 대답하는 사람들이 있다.

미덕인 줄 알았다.

그래서 한마디 더 얹어서 칭찬을 한다.

“실력도 좋으신데 겸손하기까지 하시니 인품도 정말 훌륭하시네요.” 만약 내가 그런 말을 들으면 기분이 우쭐할 것 같다.

내 본심이 상대방에게 먹혀 들어갔다고 생각할 것이다.

일부러 겸손한 척하면서 상대방으로부터 더 많은 부러움을 갖게 하는 게 내 본심이었기 때문이다.

아닌 척 표정관리를 하지만 대부분의 사람들은 그런 마음을 가지고 살아가지 않을까 싶다.

하지만 모든 사람이 다 그렇게 사는 것은 아니다.

어떤 사람은 자기가 대단한 일을 이루었음에도 불구하고 정말로 운이 좋아서 그렇게 된 것이고 남들이 도와줬기 때문이라고 생각하기도 한다.

세상에는 별난 사람들이 많다.




왜 이런 마음이 드는 것일까?

아마도 자신의 업적을 자기 자신이 대단하다고 받아들이지 못하기 때문일 것이다.

남들은 대단하다고 하는데 자신이 보기에는 대단해 보이지 않는 것이다.

자신이 더 열심히 노력했다면 더 좋았을 텐데 자신이 별로 노력을 하지 않았기 때문에 이 정도밖에 안 된 것이라고 생각하는 것이다.

그나마 운이 좋아서, 다른 사람들이 도와주어서 이만큼 되었다고 여기는 것이다.

자신은 이 결과가 못마땅한데 곁에 있는 사람들이 잘했다고 칭찬하니까 어쩔 수 없이 칭찬받는 사람의 얼굴표정을 지어야 한다.

정말 자신은 아무것도 한 일이 얼떨결에 높은 자리에 앉게 되었으니 얼마나 괴롭겠는가?

그 자리에서 자신이 맡게 될 업무가 엄청날 텐데 그걸 어떻게 감당하나 고민할 것이다.

사람들이 나의 본모습을 모르는 것 같은 기분이 들 것이다.

자신이 마치 가면을 쓰고 있는 것 같은 기분이 들 것이다.




이런 기분이 드는 현상을 ‘가면증후군(Imposter Syndrome)’이라 부른다.

가면무도회나 카니발 같은 행사에서는 사람들이 즐거운 마음으로 가면을 쓰고 다닌다.

가면 덕분에 더 유쾌한 시간을 보낼 수 있다.

하지만 가면증후군에 걸린 사람들은 가면이 싫다.

빨리 이 가면을 벗어버리고 자신의 본모습을 되찾고 싶다.

그런데 가면이 벗겨지지 않는다.

얼굴을 박박 문지르기도 해 보지만 어떻게 된 영문인지 가면이 떨어지지 않는다.

이러다가는 영영 자신의 얼굴을 못 찾는 것 아닌가 하는 두려운 마음도 생긴다.

거울에 비치는 자신의 얼굴이 싫다.

가면이기 때문이다.

자신의 원래 얼굴을 이 가면이 덮어버렸다고 생각한다.

가면을 없애고 자신의 원래 모습을 되찾는 방법이 무엇일까 고민한다.

그 고민 끝에 택하는 결정은 가면을 없애버리는 것이다.

가면과 함께 자신의 원래 모습도 사라질 수 있는데 그들은 그게 최선이라고 생각한다.




굳이 가면을 벗을 필요가 있을까?

가면 좀 쓰고 다닌다면 어떤가?

누가 그 가면 좀 벗으라고 할까?

그렇게 말하는 사람도 가면을 쓰고 다니지 않는가?

사람들은 누구나 가면을 쓰고 살아간다.

그것도 하나의 가면만 쓰는 게 아니라 때와 장소에 따라서, 만나는 사람과 마주하는 상황에 따라서 여러 개의 가면을 쓰고 살아간다.

마치 중국의 변검술처럼 하나의 가면을 벗으면 또 하나의 가면이 나온다.

위선이라고 할 수도 있을 것이다.

거짓이라고 할 수도 있을 것이다.

그러나 위선을 일삼는 사람도 나이고 거짓으로 포장한 사람도 나이다.

나에게는 이런 모습도 있고 저런 모습도 있다.

어쩌면 내가 쓰고 있는 가면들이 다 나의 모습들인지도 모른다.

이건 내 모습이 아니라 가면일 뿐이라고 할 수 있을까?

없을 것이다.

나에게는 이런 얼굴도 있고 저런 얼굴도 있다.

천의 얼굴을 가진 자가 바로 나이다.

천 개의 가면이 나에게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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