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는 운이 참 좋은 사람이다.
중학생 때 수학여행으로 서울 땅을 밟았다.
당시 내 고향 제주도의 중고등학교 수학여행은 특별했었다.
우선 중학교 수학여행은 3박 4일 정도 했는데 비행기를 타고 부산으로 가서 한반도의 남쪽을 둘러본 후 배를 타고 돌아오는 일정이었다.
고등학교 수학여행은 비행기를 타고 서울로 와서 6박 7일 동안 전국일주를 하는 일정이었다.
그런데 내 중학교는 선생님들께서 수학여행 준비를 늦게 하셨는지 부산으로 가는 코스를 잡지 못하였다.
할 수 없이 차선책으로 잡은 일정이 서울로 비행기를 타고 와서 남쪽으로 내려가 배를 타고 돌아가는 일정을 택했다.
서울 땅을 한 번도 밟아보지 못한 우리로서는 닭 대신 꿩을 먹게 된 격이었다.
고등학교 수학여행 때도 선생님께서 계획을 늦게 하셨는지 교통편이 여의치 않았다.
덕분에 우리는 다른 학교보다 하루 더 7박 8일 동안 수학여행을 보낼 수 있었다.
선생님들께서 이렇게 긴 일정으로 수학여행을 잡은 이유가 있을 것이다.
아마 수학여행이 아니면 평생 제주도를 떠나보지 못할 인생이 있을 것이라 생각하셨을 것이다.
남자들의 경우에는 군복무 때 육지에 나갈 수 있는 기회가 있다.
하지만 여자들의 경우에는 제주도 밖으로 나갈 기회가 한 번도 없는 인생도 있다.
그래서 수학여행을 통하여 섬 밖의 세상이 있다는 것을 보여주고 싶으셨을 것이다.
섬에서 사는 사람에게 세상은 둘로 나뉘어 있다.
섬과 육지이다.
사람도 두 종류로 나눈다.
제주도 사람과 육지 사람이다.
감사하게도 부모님께서 중고등학교 수학여행을 다 보내주셨기 때문에 나는 중학생 때 육지를 밟았고 고등학생 때 또 육지를 밟았다.
어릴 때 하늘을 날아가는 비행기를 보면서 저 비행기를 타고 제주도를 떠나고 싶은 마음이 들었었는데 중학생 때 그 꿈을 이루게 되었다.
제주도 밖의 세상은 엄청 넓고 넓었다.
한 번, 두 번 섬 밖으로 나가 보니 섬 밖 세상이 좋아 보였다.
그 넓은 세상으로 나가고만 싶었다.
드디어 고등학교 3학년 때 그 꿈을 이루게 되었다.
대학입학시험을 치르기 위해서 나 홀로 서울로 올라오게 되었다.
물론 누나 집에 얹혀 지냈지만 대입 학력고사 시험을 시작으로 해서 나의 서울 생활이 시작되었다.
서울에서 보는 세상은 크고 넓고 많았다.
광화문에는 교보문고가 있었고 종로에는 종로서적이 있었다.
그에 비하면 제주도에 있는 서점은 단칸방 같았다.
남대문시장, 동대문시장에 비하면 제주도의 동문시장은 구멍가게 같았다.
남산타워에 올라 보고 여의도 63빌딩에도 올라 보았다.
제주도에서 제일 높은 건물인 칼호텔보다 3배는 더 높았다.
난생처음 기차를 타고 대성리로 MT를 갔다.
넓은 물은 바다가 전부였는데 강물을 보게 된 나는 또 다른 세상을 경험하게 되었다.
많이 본 만큼 많이 알게 된 것 같았다.
비행기를 타고 제주도 밖으로 나가는 것을 출세라고 생각했다.
서울 생활을 하면서는 비행기를 타고 해외로 나가는 것을 출세라고 생각했다.
1992년 1월엔가 처음으로 해외로 나갔다.
남산 밑에서 소양교육을 받은 후 김포공항 청기와집 출국장에서 비행기를 탔다.
1주일 정도 필리핀에 다녀온 것인데 친구들이 엄청 부러워했다.
그때는 내가 굉장히 출세를 한 것 같았다.
요즘 곰곰이 생각해 보았다.
세계일주를 하고 명품으로 몸을 치장하면 출세한 것일까?
많은 팬들로부터 인기를 얻으면 출세한 것일까?
높은 직위에 오르면 출세한 것일까?
그런 기준이라면 시골교회의 성가대 지휘자였던 바흐는, 평생 고향 동네를 떠나지 못했던 칸트는, 전라도 강진 땅에서 긴 시간 유배생활을 해야 했던 다산 정약용은 출세하지 못한 사람이다.
비행기를 타고 밖으로 많이 나간 사람들에게 묻고 싶다.
“당신은 무엇을 얻고 무엇을 남겼냐고?”