살아내는 삶을 살자

by 박은석

삶에는 세 가지 유형이 있다.

살아지는 삶, 살아가는 삶, 살아내는 삶이다.

나태주 선생의 <너를 아끼며 살아라>란 책에 언급되어 있다.

자세한 설명을 곁들이지 않았기에 내 나름대로 생각해 보았다.

살아지는 삶이란 어떤 것일까? 어떤 노력을 하지 않아도 거저 주어지는 삶이라 하겠다.

어린아이처럼 떠 먹여주고 입혀주고 재워주는 혜택을 받는 삶이다.

누군가의 도움을 받으며 사는 삶이다.

아기가 조금 성장하면 자기 스스로 먹고 입고 잠을 잔다.

그래도 여전히 부모와 사회의 보호를 받는다.

이 시기의 삶은 살아가는 삶이다.

안정된 울타리 안에서 꿈을 가지고 그 꿈을 실현하기 위해 노력하며 산다.

그러나 삶을 살다 보면 꿈도 희망도 사라지는 상황에 맞닥뜨릴 때가 있다.

살아질 것 같지도 않고 살아갈 수도 없을 것 같은 때가 있다.

삶을 내려놓고 포기하고 싶은 때가 있다.

그때 우리는 이를 악물며 살아내는 삶을 산다.




구약성경에 나오는 모세는 아기였을 때 갈대상자에 담겨 갈대밭에 놓여졌다.

그리스신화에 나온 것처럼 강물에 떠내려간 것이 아니라 갈대밭에 숨겨졌다.

하지만 이집트의 공주가 갈대밭에 숨겨진 갈대상자를 발견했고 그 안에 있는 모세를 보았다.

히브리인의 아기였으니까 죽이고 말았을 텐데 하필 그때 아기 모세가 울어재끼니까 불쌍히 여겨 양자를 삼았다.

졸지에 모세는 이집트의 왕자가 되었다.

이집트의 왕자가 되기 위해서 모세가 노력한 것은 아무것도 없다.

고작 한 일이라곤 이집트의 공주를 보고 울음을 터뜨린 정도였다.

모세는 이집트의 왕궁에서 40년 동안 잘 먹고 잘 살았다.

왕자였으니까 곁에 있는 사람들이 먹을 것, 입을 것을 다 챙겨주었다.

가만히 있어도 삶을 살 수 있었다.

살아지는 삶이었다.

모세는 자신이 그런 삶으로 생을 마감하고 싶지 않았다.

그래서 마흔 살이 되었을 때 이집트의 궁궐에서 나왔다.




마흔 살의 모세는 자기 민족을 해방시키려고 노력했다.

그러다가 이집트의 관리 한 명을 죽이고 도망자 신세가 되고 말았다.

미디안 광야로 도망가서 우여곡절 끝에 그곳 부족장의 딸과 결혼하여 미디안 제사장의 사위가 되었다.

이집트 궁궐에서 배운 학문과 무술들은 더 이상 쓸모가 없었다.

미디안 제사장의 양을 키우며 안정된 삶을 살았다.

아들을 낳았고 또 낳았다.

한 가정의 가장이자 한 여자의 남편, 두 아들의 아버지로서 역할을 충실하게 감당하며 살았다.

하루 일을 하면 하루의 소득을 얻었다.

1년 일을 하면 1년의 수입이 있었다.

삶은 안정되었다.

그렇게 40년을 미디안 제사장의 사위로 살았다.

안정된 환경 속에서 자신의 능력을 십분 발휘하면서 살았다.

그곳에서 계속 살았다면 모세는 게르솜의 아버지로 게르솜의 자녀의 할아버지로 살아갈 수 있었을 것이다.

그러나 모세는 그렇게 살아가는 삶을 택하지 않았다.




80세가 된 모세는 새로운 삶에 도전했다.

노년의 나이에 이스라엘 민족을 이끌어서 출애굽하였다.

쉽지 않은 일이었다.

그 후 광야에서 40년을 버텼다.

대단했다.

백성들의 원망을 들었다.

반역하는 이들도 있었다.

잠자리는 고사하고 당장 먹을 것과 마실 것도 부족했다.

노략질을 일삼는 이방 나라들의 침입도 있었다.

내우외환이었다.

광야에서 모세가 이끌었던 이스라엘 백성들의 모습이 그랬다.

하루에 열두 번도 더 포기하고 싶은 심정이었을 것이다.

당장에라도 이집트의 궁궐로 돌아가서 안락한 삶을 살고 싶은 마음이 일었을 것이다.

그러나 모세는 그런 마음들을 쓰레기통에 던져버렸다.

그리고는 광야의 척박한 삶을 견뎌내기로 마음먹었다.

불평과 불만이 가득한 백성들 앞에서 모세는 살아지는 삶도 아닌, 살아가는 삶도 아닌, 살아내는 삶을 살았다.

살아내는 삶을 살았기 때문에 우리는 모세를 위대한 지도자로 부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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