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박은석 Jun 02. 2024

9회 2아웃, 경기를 끝내는 것은 내가 한다


야구는 9회 2아웃 이후부터라는 말을 한다.

야구는 9회까지의 정규 이닝 동안 27명의 타자를 아웃시키면 끝난다.

9회 2아웃이라면 26명의 타자를 아웃시킨 것이다.

이제 한 명만 잡으면 경기는 끝난다.

승률 96.23%이다.

이기고 있는 팀에서는 승리의 축가를 부를 준비를 한다.

관중들의 함성은 더욱 커진다.

지고 있는 팀에서는 다 끝났다고 하면서 일찌감치 짐을 챙기고 나가는 관중들도 있다.

그래도 혹시나 혹시나 하는 마음으로 가슴 졸이며 마지막 카운트를 지켜보는 관중들도 있다.

투수의 팔에는 힘이 넘친다.

투수의 손을 떠난 공은 0.5초도 안 되어 포수의 미트 속으로 빨려 들어간다.

‘퍽’하는 소리가 울린다.

심판이 볼 판정을 내렸지만 엄청나게 위력적이다.

그다음 공도 볼 판정이 났지만 투수는 개의치 않는 눈치다.

세 번째 공은 스트라이크다.

이제 공이 몇 개 남지 않았다.

타자가 휘두를 수 있는 기회는 단 두 번이다.




투수와 포수가 사인을 주고받았다.

손가락 몇 개로 하고 싶은 말을 다 한다.

심호흡을 가다듬은 투수가 힘차게 공을 던졌다.

‘딱!’ 방망이에 공이 맞는 순간 모든 사람이 멈춰버렸다.

얼음 땡 놀이를 하던 아이들처럼 눈동자도 꿈쩍거리지 않았다.

1초 정도 되었을까?

“와~”하는 함성을 질러대는 절반의 관중들과 “아~”하는 신음소리를 내는 절반의 관중들이 교차된다.

홈런, 홈런이다.

9회 2아웃에서 동점 홈런이다.

다 끝났다고 생각했던 경기가 이제 다시 시작이다.

9회를 마치면 연장전으로 들어간다.

말 그대로 전투가 연장되었다.

9회가 끝났지만 경기는 끝나지 않았다.

흥분한 아나운서는 “이런 경기가 다 있습니다.”라고 외친다.

그렇다.

경기를 하다 보면 이런 경기도 있고 저런 경기도 있다.

예상대로 끝나는 경기도 있고 예상치 않았던 방향으로 전개되는 경기도 있다.

심판이 경기 종료를 알리기 전까지는 아무도 모른다.




살다 보면 9회 2아웃 상황에서 타석에 올라가는 타자 같을 때가 있다.

강속구를 뿌리는 투수의 공을 물끄러미 지켜보는 상황일 때가 있다.

체력은 바닥이 났고 방망이를 휘두르는 팔에는 힘이 다 떨어진 것 같다.

모든 사람이 나를 지켜보는 것 같다.

중간에 나왔다가 들어간 선수들은 잊히지만 마지막 타자는 오래도록 기억에 남는다.

다 끝났다고 외치는 소리가 들린다.

마지막 기회인데, 이 기회를 살리고 싶은데, 마음처럼 될지 모르겠다.

도망치고 싶은 자리이지만 도망칠 수 없는 자리이다.

내가 할 수 있는 일이라곤 그동안 수없이 연습했던 것처럼 타석에 들어서서 날아오는 공을 받아치는 것뿐이다.

헛스윙이면 어떡하냐고?

헛스윙도 경기의 일부이고 삶의 일부임을 받아들여야 한다.

아웃되면 어떡하냐고?

아웃되면 그때는 나의 역할도 끝나는 것이다.

영원히 지속되는 경기는 없다.

언젠가는 반드시 끝나게 되는 경기이다.




경기가 어떻게 끝날지, 인생이 어떻게 끝을 맺을지 아무도 모른다.

9회 2아웃까지 지고 있던 팀이 기적의 역전승을 거둘 수도 있다.

9회 2아웃에서 동점을 만든 뒤 연장전으로 접어들 수도 있다.

20세기 최고의 첼리스트였던 파블로 카잘스는 90세가 넘어서도 계속 첼로 연주를 했다.

아직 삶이 끝나지 않았기 때문이다.

첼리스트로서의 삶을 계속 살고 있었기 때문이다.

암 말기 판정을 받고도 삶을 붙잡는 사람들이 있다.

시한부 선고를 받고도 치열하게 살아가는 사람들이 있다.

이제 다 끝났으니 그냥 놓아버리라고 하는 소리도 들린다.

하지만 그들은 더 강하게 삶을 붙잡는다.

9회 2아웃 상황에서 타석에 들어선 사람들이다.

기적의 주인공이 될 수도 있지만 헛스윙 삼진으로 물러날 수도 있다.

운명이 나를 그 자리에 세우는 것 같다.

하지만 내가 방망이를 휘두르기 전에는 끝나지 않는다.

경기를 끝내는 것은 바로 내가 한다.


매거진의 이전글 곧 음악의 종말이 올 것 같다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