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호중 사건을 보면서...
마음이 무료할 때는 음악을 듣는다.
어떨 때는 연주회 실황을 동영상으로 보면서 음악을 듣는다.
어떨 때는 배경음악으로 틀어놓고 다른 일을 한다.
이러나저러나 음악은 나에게 도움을 준다.
일단은 들떴던 마음이 가라앉고 안정을 찾는다.
그냥 울리는 소리일 뿐인데 그 소리가 내 마음을 울린다.
얼굴에 기쁨의 웃음을 주기도 하고 두 눈에서 눈물이 흐르게도 한다.
어쩌다가 예전에 들었던 음악이 들리면 오래전 그 음악을 들었던 때로 시간 여행을 떠난다.
음악이 흐르는 동안 그때의 감정이 북받치기도 하고 그 시절의 친구들 얼굴이 떠오르기도 한다.
<사월의 노래>인 “오 오 내 사랑 목련화야”라는 선율이 나오면 고등학교 1학년 때 음악시간으로 돌아간다.
합창반 입단 오디션으로 이 노래를 부르게 하셨던 음악선생님의 모습도 보인다.
노래를 듣는 내내, 노래를 부르는 내내 나는 고등학교 시절로 추억여행을 떠난다.
70대 중후반의 어르신들과 함께 수목원으로 봄소풍을 갔다.
한 시간 반 동안 수목원을 둘러보면서 우리의 입에서는 “좋다!”라는 말이 연이어서 나왔다.
수목원을 한 바퀴 둘러본 후 출입구 앞에 있는 쉼터에서 잠시 숨을 돌리고 있었다.
누군가의 입에서 “오가며 그 집 앞을 지나노라면 그리워 나도 몰래 발이 머물고”라는 노래가 터져 나왔다.
그 순간 그 쉼터에 앉아 있던 여남은 명의 어르신들이 “오히려 눈에 띌까 다시 걸어도 돼 오면 그 자리에 서졌습니다.” 합창을 하셨다.
그 순간만큼은 70대의 할아버지가 아니라 열일곱 앳된 소년으로 돌아간 듯하였다.
연이어서 “나의 살던 고향은 꽃피는 산골” 노래가 울려 퍼졌는데 노래를 부르던 어르신들 모두가 개구쟁이 어린아이 같았다.
수목원 직원이 웃으면서 “이제 그만하실 거죠?”라고 여쭈었다.
민원이 들어온다고 했다.
젠장! 노래도 마음껏 못 부르는 세상이 되어 버렸다.
노래가 우리의 마음을 움직이고 마음과 마음을 연결시켜 주는 도구가 되기까지는 수천 년의 시간이 흘렀다.
인류 최초의 노래는 아마도 신에게 바쳤던 찬양이었을 것이다.
노래에 어떤 힘이 실리는 것을 체험하면서 노래 자체를 신령한 도구처럼 여겼다.
간혹 노동의 피로감을 덜기 위한 노동요가 나왔지만 주류 음악은 신을 찬양하는 종교 음악이었을 것이다.
그러던 것이 르네상스를 거치면서 인간의 삶을 노래하는 음악으로 점차 바뀌었다.
그 영향으로 사랑과 이별을 노래하는 음악들이 나왔다.
음악의 영역이 굉장히 확장되었다.
더 좋은 노래를 부르기 위해서 다양한 악기들이 만들어졌고 연주되었다.
혼자 노래하는 것도 좋지만 여럿이 노래하는 것이 더 좋을 때가 있었기에 합창단을 조직하여 더 아름다운 노래를 부르게도 하였다.
악기와 사람의 목소리를 조화시키는 기술이 발전하면서 지휘자라는 새로운 직함도 생겨났다.
20세기를 지나면서 음악은 비약으로 발전했다.
다양한 장르의 음악이 나와서 다양한 상황에 있는 사람들을 치유하였다.
사실, 음악가는 예술가이면서 심리상담가이고 치료자이기도 하다.
사람들이 음악에 열광하는 이유는 음악이 자신들의 아픔을 치료해 줄 것이라고 믿기 때문이다.
그런데 이러한 현상을 교묘히 이용하는 부류들이 있다.
그들은 음악을 돈벌이의 수단으로 이용하려고 한다.
좋은 음악을 만들고 사람들에게 그 음악에 빠져들게 한다.
하지만 그 이면을 들여다보면 이런 일들을 통해서 더 많은 돈을 벌려고 하는 욕심꾸러기가 자리잡고 있는 게 보인다.
그들에게는 음악을 통해 신에게 가까이 가려고 하는 종교심이 사라져 버렸다.
인간 본연의 희로애락이라는 감정들이 자취를 감춰버린 것 같다.
음악이 그저 돈벌이의 도구가 되어 버린 것 같다.
음악을 듣는 사람들에 대한 배려는 없다.
곧 음악의 종말이 온 것 같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