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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박은석 Jun 10. 2024

삶에는 은퇴가 없습니다


상가 건물에서 부동산 중개사무실을 운영하던 분이 있었는데 얼마 전에 접으셨다.

어디 다른 데로 옮기시나 했는데 그것도 아니었다.

마침 그분을 만난 김에 궁금해서 물어봤다.

왜 그만두셨냐고.

그랬더니 그분은 살짝 웃으면서 “이제 은퇴했어요.”라고 하셨다.

아니 자영업인데 은퇴가 어디 있어?

거기다가 아직 한참 일을 해도 괜찮을 나이인데.

요즘 부동산 시장이 불경기여서 그런가?

은퇴했다는 말을 듣고 뭐라고 한 말씀드리고 싶었는데 딱히 떠오르지 않았다.

분명 무슨 사연이 있었을 것이다.

그런 사연까지 내가 알 필요는 없다.

그렇다고 해서 그분이 그냥 아무 일도 안 하고 푹 쉬면서 여생을 지내실 분도 아니다.

분명 다른 어떤 일을 계획하고 있을 것이다.

순전히 내 생각이지만 말이다.

문득 한마디 말이 튀어나왔다.

“부동산 중개소에는 은퇴가 있어도 삶에는 은퇴가 없습니다.” 그리고 가볍게 목례를 하고 헤어졌다.




그분과 헤어졌는데 자꾸 마지막 말이 머리를 맴돌았다.

“삶에는 은퇴가 없습니다.” 

꽤 괜찮은 말 같다.

사실 나도 쉰 살이 넘어서면서 ‘은퇴’라는 단어를 종종 생각하고 있다.

그래도 60세 어간에 은퇴하거나 좀 더 시간을 늘려서 70세를 전후해서 은퇴하는 경우는 꽤 오랫동안 할 일을 갖고 있는 경우다.

아이돌 가수는 서른 즈음이면 은퇴를 고민한다.

프로야구 선수들은 마흔 즈음이면 대개가 은퇴한다.

얼마 전에는 라파엘 나달이라고 하는 테니스 선수가 은퇴한다는 소문이 있었다.

테니스 코트는 3종류다.

잔디 코트도 있고 딱딱한 바닥 코트도 있고 흙 코트도 있다.

나달은 흙 코트의 최강자였다.

‘흙신(神)’이라는 별명이 붙을 정도였다.

그런 그가 은퇴를 고려하고 있다.

엘지 트윈스의 이병규도, 박용택도 은퇴했다.

축구의 신계(神界)에 오른 존재라고 했던 리오넬 메시도, 크리스티안 호날두도 머지않아 은퇴할 것이다.




은퇴하면 그 후에는 뭘 할까?

어떻게 살까?

고민이 된다.

옛날 농사를 지었던 내 아버지나 할아버지는 은퇴라는 말을 쓰지 않으셨다.

그분들에게는 은퇴 연령이 없었다.

몸을 움직일 수 있는 한 밭에 나가서 씨를 뿌리고 김을 매고 추수를 하셨다.

그런데 나는 은퇴를 생각하며 살고 있다.

한때는 ‘은퇴’라는 말이 멋있게 들렸다.

은퇴교수라고 하면 연세가 많다는 것 외에도 그 분야에 있어서 최고 권위자라는 느낌이 들었다.

그런데 이제는 은퇴라는 말만 들으면 세상의 뒷골목으로 밀려난 것 같은 느낌이 든다.

그래서 은퇴가 두렵다.

은퇴를 피하고 싶다.

어떤 이들은 자신의 실제 생일보다 주민등록상의 생년월일이 늦게 찍힌 경우가 있다.

잘 때는 동갑내기를 형이라고 불러야 했기 때문에 자존심이 상했을 것이다.

그런 그들이 오십 대 중반이 되면 어깨를 더 편다.

자기는 몇 년 더 일할 수 있다며 기분 좋아한다.

그래봤자 곧 은퇴한다.




세상은 이렇게 우리에게 은퇴라는 말로 겁박한다.

은퇴하면 할 수 있는 일이 없게 될 것이라는 생각이 우리를 두렵게 한다.

은퇴하면 아무 데서도 불러주지 않을 것 같은 마음에 외로움이 몰려올 것 같다.

하지만 잊지 말아야 할 사실이 있다.

삶에는 은퇴가 없다! 

어머니 앞에서 나는 아들이다.

죽어도 나는 어머니의 아들이다.

은퇴 아들은 없다.

아내 앞에서 나는 남편이다.

죽어서도 나는 남편일 것이다.

이혼하지 않을 테니까 은퇴 남편은 없을 것이다.

아이들 앞에서 나는 아빠이다.

죽어서도 나는 우리 아이들의 아빠이다.

나는 아이들의 아빠에서 은퇴할 수 없다.

은퇴 아빠는 없다.

내 인생의 마지막 호흡이 끊기면 은퇴하는 것인가?

그렇지 않다.

나는 이 세상에서의 삶이 끝난 후에는 저 세상에서 태어날 것을 믿는다.

그러니까 생이 다하는 것은 은퇴가 아니라 새로운 삶을 시작하는 것이다.

나는 믿는다.

삶에는 은퇴가 없다는 것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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