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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박은석 Jul 08. 2024

나는 고기 굽는 일을 잘 못한다


나는 어지간한 일들은 곧잘 한다.

사람이 만든 것은 사람이 고칠 수 있다는 생각을 가지고 있고 다른 사람이 할 수 있는 일은 나도 할 수 있다는 생각도 가지고 있다.

내가 지내왔던 어느 모임이나 조직에서 내가 일을 못한다는 소리를 들은 적은 없다.

최고의 실력가는 아니지만 웬만큼은 했다.

만년 총무로 지내는 모임도 있다.

잘 모르는 일은 인터넷을 뒤져서 방법을 알아내곤 한다.

고장 난 물건은 일단 뜯어본다.

뜯어보면 망가진 부분이 보인다.

뜯어보다가 더 망가지면 어떡하냐고?

그때는 버리면 된다.

어차피 고장 나서 쓰지 못할 물건이었다.

그렇게 하다 보니 아이폰도 고쳐서 쓰고, 컴퓨터도 조립을 하고, 화장실 변기도 뜯어서 고쳐 쓰고 있다.

식구들은 이런 내가 있기 때문에 편하기는 할 것이다.

문제가 생기면 나에게 연락만 하면 되니까.

심지어 벌레를 잡는 일까지 잘한다.

내가 맥가이버는 아니지만 박가이버는 된다.




얼마 전에는 냉동실에 얼린 고등어가 있길래 그놈을 꺼내서 고등어조림을 해 봤다.

맛이 괜찮았다.

며칠 후 아내가 고등어와 감자를 사 왔다고 했다.

나에게 고등어조림을 해 달라는 말이었다.

제대로 고등어조림을 해 보려고 인터넷에서 레시피를 살펴봤다.

그 레시피에 뭐 하나를 더 추가했다.

나만의 고등어조림이 탄생했다.

맛이 어땠냐고?

꽤 괜찮았다.

아마 아내는 이틀 이상 고등어조림을 먹었을 것이다.

내가 평상시에 안 해서 그렇지, 한다면 까짓것 못 할 게 뭐가 있겠나 싶다.

지금까지 목표를 세우고 그 목표를 성공한 경험들도 많다.

1년 200권 책 읽기도 성공했고, 1년 300권 책 읽기도 성공했다.

올해는 1년 400권 책 읽기에 도전하고 있는데 이것도 성공할 것 같다.

하루 한 편 글쓰기도 3년 동안 성공했다.

해 보니까 되더라는 말이 저절로 나온다.

하면 된다는 말을 삶으로 실현시키고 있다.

나는 그렇게 살아왔다.




그런데 나도 잘 못하는 일이 있다.

아예 사람들에게 내가 못하는 일이라고 떠벌이기도 하는 일이 있다.

그게 무슨 일이냐면...

바로 고기 굽는 일이다.

신기하게도 내가 고기를 구우면 고기가 시커멓게 탄다.

다 그런 것은 아니지만 상당수가 그렇게 탄다.

그래서 고깃집에 가서 고기를 구우라고 집게와 칼을 주면 긴장이 된다.

고기 잘 굽는 사람에게 물어본 적이 있다.

그랬더니 여러 번 고기를 굽다 보면 잘 구울 수 있다는 말만 했다.

나도 여러 번 구웠다.

그런데 여러 번 태웠다.

물론 백 번 이백 번 굽다 보면 실력이 좋아질 것이다.

하지만 그렇게 하기는 싫다.

그래서 고깃집에 갈 때면 사람들에게 이야기를 한다.

나는 고기를 잘 못 굽는다고.

그리고 샘플로 불에 탄 고기를 몇 점 보여준다.

그러면 내 주변에 있는 사람들이 얼른 나에게서 집게와 가위를 빼앗아 간다.

그들은 고기를 굽고 나는 잘 구워진 고기를 맛있게 먹는다.




팔방미인이라고 해서 십육방미인이 되는 것은 아니다.

어디에선가 부족한 면이 생길 수 있다.

모든 것을 다 잘하는 사람은 세상에 아무도 없다.

잘하는 일도 있고 잘 못하는 일도 있고 전혀 할 수 없는 일도 있다.

모든 일을 다 잘할 수는 없다.

나에게 맞는 일은 잘할 수 있지만 나에게 맞지 않는 일은 잘 못하거나 전혀 할 수 없다.

이 사실을 빨리 인정해야 마음 편하게 살 수 있다.

지금 내가 하는 일은 나에게 맞는 일이다.

성과가 좋든 안 좋든지 간에 나에게 맞는 일이니까 내가 하고 있다.

하지만 세상에는 내가 잘 못하는 일도 있고 내가 전혀 할 수 없는 일도 있을 것이다.

그런 일들은 용케도 피하면서 살고 있다.

나는 내가 잘하는 일만 하기에도 버거운 인생을 살고 있다.

그러니까 내가 잘 못하는 일들이나 내가 전혀 하지 못하는 일 때문에 속상해하지 말아야 한다.

내가 하는 일만으로도 충분한 인생을 살고 있기 때문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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