학교에 다니는 아이들이 하나씩 방학을 맞이했다.
한 학기 동안 나름대로 고군분투했다.
물가도 오르고 집값도 오르고 기온도 오르고 열받는 일도 오르지만 성적은 오르지 않았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한 학기를 마칠 수 있었다는 것은 큰 의미가 있다.
누구나 다 학기를 마칠 수 있는 것은 아니기 때문이다.
열심히 학교 다녔던 아이들이 잠깐의 쉼을 갖는다.
방학이다.
그런가 하면 열심히 일한 어른들도 쉼을 맞이한다.
여름휴가이다.
요즘은 휴가를 자기가 가고 싶은 계절에 골라서 가기도 하지만 예전에는 무조건 여름이었다.
특히 7월 말에서 8월 초에 집중되었다.
지금도 여전히 이 기간에 휴가를 떠나는 사람들이 많다.
산에도 계곡에도 바다에도 휴가객들이 몰려든다.
비행기를 타고 해외로 떠나려는 사람들로 공항은 북새통을 이룬다.
큼직한 가방만큼이나 휴가를 떠나는 사람들의 마음은 설렘으로 잔뜩 부풀어 오른다.
‘휴가(休暇)’는 ‘쉴 휴(休)’ 자에 ‘틈 가(暇)’ 자가 합쳐진 말이다.
그러니까 ‘쉴 틈’이라는 의미를 지니고 있다.
쉬지 않고 살아갈 수 있는 사람은 없다.
우리 몸은 쉴 때 에너지를 비축했다가 일할 때 에너지를 발산한다.
이 이치를 잘 알았던 우리 조상들은 아침나절 일을 하다가 점심이 오기 전에 잠깐 쉬는 시간을 가졌다.
그때 가벼운 음식을 먹었는데 이를 ‘새참’ 혹은 ‘중참’이라고 불렀다.
새참을 먹은 후에 노래 한 소절 부르고 나면 다시 일을 하고픈 마음이 들었다.
“어디 한번 힘 좀 내 보세!” 하며 하던 일을 계속했다.
그러다가 점심시간이 되면 또 쉬었다.
고봉밥을 한 숟갈 떠서 나물 위에 올려놓고 된장 한 젓갈 넣어 쌈을 해서 먹으면 세상 부러울 게 없었다.
식사 후에는 포만감으로 충만하여 나무 그늘 아래서 한숨 푹 자기도 했다.
이런 쉬는 시간이 있었기 때문에 한여름의 힘든 농사일을 잘 감당할 수 있었던 것이다.
쉬는 시간은 밑도 끝도 없이 손 놓고 아무 일도 안 하는 시간이 아니다.
그저 먹고 마시고 노는 시간이 아니다.
쉬는 시간은 다음 일을 하기 위해서 준비하는 시간이다.
학생들에게는 한 시간 수업이 끝나면 10분 정도의 쉬는 시간이 주어진다.
다음 시간 수업을 위해서 교과서도 준비하고 화장실도 다녀오는 시간이다.
졸음이 몰려오면 그 시간에 쪽잠을 자기도 한다.
책상 위에 두 팔을 올려 베개를 삼고 잠깐 눈을 붙이는 그 쪽잠은 학창시절에만 맛볼 수 있는 꿀잠이다.
열심히 일하고, 집중해서 일하고, 최선을 다해서 일을 하면 일이 잘될 것 같지만 실상은 그렇지 않다.
쉬지 않고 일만 하면 과로로 쓰러지기 십상이다.
더 많은 일을 하려면 더 많이 쉬어야 한다.
나무를 잘 베려면 톱날을 날카롭게 가는 시간이 필요하다.
그 시간은 나무꾼에게 있어서 쉬는 시간이기도 하겠지만 나무를 잘 자르기 위한 준비 시간이기도 하다.
나의 휴가도 다가오고 있다.
이번 휴가를 어떻게 보낼까 이렇게도 저렇게도 생각해 보다가 일단 한 가지는 결정했다.
지리산 종주이다.
작년에도 지리산 종주를 했는데 올해도 또 지리산 종주에 도전하려고 한다.
작년에는 성삼재에서 출발해서 천왕봉을 거쳐 백운동으로 내려왔는데 이번에는 화엄사에서 출발해서 천왕봉을 거쳐 대원사로 내려올 계획이다.
등산객들 사이에서 ‘화대종주’라고 하는 45㎞가 넘는 만만치 않은 길이다.
이 길을 걷는 동안에는 전화도 카톡도 안 한다.
컴퓨터도 안 본다.
남들의 시선을 의식하지도 않고 무엇을 먹을까 무엇을 입을까 고민하지도 않는다.
빽빽한 시멘트벽 사이로 비치는 전깃불 대신에 밤하늘에 총총히 빛나는 별빛을 볼 것이다.
빵빵거리는 자동차의 경적 대신에 찌르르 울어대는 풀벌레 소리를 들을 것이다.
사람 냄새 대신에 풀 냄새 나무 냄새를 맡을 것이다.
내가 꿈꾸는 여름휴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