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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박은석 Jul 30. 2024

인연(因緣)

故 이병억 님을 추모하며


옷깃만 스쳐도 인연이라는데 통성명을 하고 집에 오가고 밥을 같이 먹었다면 굉장한 인연이라 하겠다.

그런 인연도 길을 걸어가다가 옷깃을 스치는 것처럼 어느 날 갑자기 찾아온다.

그 시간에 내가 그곳에 있었기 때문에, 그 시간에 그가 그곳에 있었기 때문에 이루어진다.

만약 내가 그 자리에 없었다면 그를 만날 수 없었을 테고 그와 내가 연줄로 묶일 일도 없었을 것이다.

그와 내가 같은 시간에 같은 공간에 있을 수 있다는 것을 확률로 계산한다면 얼마나 될까?

계산기를 두드리면 그 수치를 뽑아낼 수 있을까?

글쎄?

그걸 계산하며 날밤을 보내느니 나는 그냥 기적이라 하겠다.

정현종 선생이 <방문객>에서 노래했지 않은가?


“사람이 온다는 건

실은 어마어마한 일이다.

그는

그의 과거와

현재와

그리고

그의 미래와 함께 오기 때문이다.

한 사람의 일생이 오기 때문이다.”


공감한다.

그와 내가 만난 건 어마어마한 기적이었다.




15년 전에 한 어르신을 만났다.

팔순의 연세이셨다.

서울대학교병원 중환자실에서였다.

그분의 부인께서 얼마 남지 않은 호흡을 내쉬고 계셨다.

그 모습을 지켜보는 가족이라면 편안하게 천국으로 가시기를 바라는 마음이 저절로 일어난다.

지금까지 어떻게 살아오셨는지는 그리 중요하지 않다.

만약 죽음 이후의 삶이 있다면 그곳에서 평안하게 지낼 수 있기를 바랄 뿐이다.

그분의 배우자께서 교회에 다니셨기 때문에 하나님나라, 천국에 잘 가시기를 바라는 마음이었다.

그 마음으로 함께 기도했었다.

그분은 자기는 기도할 줄 모른다고 하셨다.

하나님을 믿는 것도 아니고 교회에 다니지도 않는다고 하셨다.

단지 부인이 교회에 다녔으니까 하나님께 기도해 주기를 바라는 마음이라 하셨다.

다정한 마음을 지닌 분이라 생각했다.

죽기 전에 배우자의 마음을 헤아려 주는 것, 당연한 일 같지만 그렇게 살아가기가 쉽지 않다는 걸 안다.




부인의 장례를 치르고 난 후 그분이 교회에 나오셨다.

갑자기 신앙이 생겨서였을까?

그렇지 않을 것이다.

죽음이 두려워서였을까?

그것도 아닐 것이다.

단지 한평생 사랑했던 사람이 앉았던 자리에 앉아보고 싶으셨기 때문일 것이다.

이생에서 다시는 보지 못할 아내의 체온을 느끼고 싶으셨기 때문일 것이다.

그분에게는 아내가 전부였다.

아내와 함께 만들어 온 가족이 전부였다.

만날 때마다 그분은 당신의 이야기를 들려주셨다.

가난한 집안에서 아버지를 일찍 여의고 동생들을 먹여 살려야 했다.

열다섯 살.

나무를 팔아서 살아갈 수도 없었고 농사를 지어서 살아갈 수도 없었다.

탄광에 가면 돈 벌 수 있다는 말에 혼자 탄광 사무실에 찾아가셨다고 한다.

“안돼!” 그분에게 돌아온 대답이었다.

3년 후에나 오라고 했다.

나이가 어려서 받아줄 수 없다는 말이었다.

그때부터였을까?

그분은 포기하지 않는 것을 삶의 모토로 삼으셨다.




나이를 속이고 탄광에 들어가셨다.

남들보다 더 열심히 일을 하셨다.

탄광이 무너질 때 그 안에 갇혀서도 안 되었다.

동생들을 위해서, 가족을 위해서 살아남아야 했다.

억척스럽게 일을 했다.

학교에 다닐 수 있는 형편은 안 되었다.

그래도 배워야 했다.

일을 하면서 배웠고 사람들에게서 배웠고 틈틈이 책을 읽으면서 배웠다.

똘똘한 아이가 들어왔는데 일을 참 잘한다는 소문이 돌았다.

탄광 속에 내려보낼 게 아니라 사무실에서 데리고 있으면 좋을 것이라는 말도 있었다.

남들보다 일찍 승진했다.

여러 사람을 관리해야 하는 임무도 주어졌다.

똑 부러지게 잘했다.

일 잘하고 똑똑한 총각이 있다는 소문은 딸 가진 집안에 슬그머니 전해졌다.

경주 최씨 집안의 얌전한 처녀와 혼인을 맺었다.

결혼했으니까 살림이 나아졌을까?

그렇지 않다.

더 많이 일을 해야 했고 더 열심히 일을 해야 했다.

먹일 입이 더 많아졌기 때문이다.




딸이 태어나면서 아버지가 되었다.

또 딸이 태어나 두 아이의 아버지가 되었다.

아들도 보았다.

셋째 딸도 보았다.

1남 3녀의 아버지가 되셨다.

아이들을 볼 때마다 얼마나 기쁘셨을까?

퇴근해서 집에 올 때마다 내 새끼들을 볼 수 있다는 마음에 심장이 쿵쾅거렸을 것이다.

오는 길에 가게에 들러 눈깔사탕도 사고 풀빵도 사고 과자봉지도 사서 오셨을 것이다.

큰딸아이를 국민학교에 들여보낼 때 아버지가 못한 공부 실컷 하라고 마음속으로 응원하셨을 것이다.

기왕에 공부하려면 탄광촌이 아니라 서울에서 해야 한다며 자식들을 하나씩 떠나보내셨다.

집에 와서 자식들의 빈자리를 볼 때 아버지의 마음에는 더 큰 구멍이 생겼을 것이다.

그래도 참아야 했다.

세상은 험하고 그 험한 세상을 헤쳐 나가려면 이를 악물고 살아야 한다고 생각했다.

자식들도 그렇게 억척스럽게 커 주기를 바랐다.

하면 된다는 마음을 품고서 말이다.




온 나라가 새마을운동으로 들썩일 때 그분은 새마을지도자가 되셨다.

대통령으로부터 훈장도 받으셨다.

주변 사람들로부터 존경을 받으셨다.

안 되는 일도 그분이 나서면 되게 하셨다.

대학을 마친 자식들이 각자 자신들의 삶을 찾아 떠나갔다.

취직도 했고 결혼도 했고 손주들도 낳았다.

그러는 사이에 연탄을 때던 집들은 기름보일러를 들였고 얼마 안 되어 도시가스가 아파트에 들어오기 시작했다.

탄광촌은 문을 닫았고 안전모 아래 검게 숯 칠 된 사람들의 모습도 보이지 않게 되었다.

그분도 정든 고향을 떠나 자식들 곁으로 오셨다.

도시에서의 삶이 쉽지는 않으셨을 것이다.

하지만 가족이 있기에 견딜 수 있었다.

그분에게는 항상 가족이 삶의 전부였으니까.

그랬기에 함께 살던 아들 가정을 분가시킬 때 마음 한쪽도 찢어졌을 것이다.

언젠가 떠나보내야 하는 게 당연한 일인데 그 당연한 일을 할 때마다 마음이 찢어졌다.




그분에게도 꿈이 있었을 것이다.

하지만 그 꿈을 펼칠 수가 없었다.

꿈을 펼치기에는 너무 힘든 인생이셨다.

대신 자식들에게 꿈을 심어주는 것을 택하셨다.

넓은 세상에 나가서 높이 날아오르라고 하셨다.

높이 날아오르지 못할 때마다 엄하게 야단을 치셨다.

그렇게 약해서는 안 된다고 하셨다.

강해야만 살아남는다고 하셨다.

엄하게 강하게 키우는 게 자식 농사를 잘 짓는 것이라 생각하셨다.

당신은 그렇게 대하는 게 사랑이라고 생각하셨다.

하지만 자식들은 그런 아버지가 무서웠다.

아버지 앞에서 눈물도 많이 흘렸을 것이다.

아버지는 그런 모습을 애써 외면하셨다.

강한 모습을 보여주려고만 하셨다.

그때는 아버지가 모르셨던 것 같다.

세상의 모든 자식들은 부모보다 약하다는 사실을 말이다.

그런데 자식들도 몰랐던 사실이 있다.

실컷 야단치셨던 아버지도 혼자만의 방에 들어가서는 엉엉 울고 있었다는 사실을 말이다.




이제 늙으니까 자식들에게 더 이상 해줄 게 없다며 아쉬워하셨다.

손주들에게 뭘 좀 주고 싶은데 그러면 손주들이 할아버지를 의지할까 염려라고도 하셨다.

답답할 때면 붓글씨를 쓰셨다.

가끔은 고향땅에 다녀오기도 하셨다.

길에서 우연히 나를 만나면 밥이나 같이 먹자며 식당으로 데리고 가기도 하셨다.

미주알고주알 다 일러서 나도 그 집 사정을 꽤 많이 알게 되었다.

외손자가 서울대학교에 다니는데 나중에 취직 잘하고 장가 잘 갔으면 좋겠다고 했다.

둘째 사위는 중국에서 사업을 하는데 잘 되었으면 좋겠다고 했다.

셋째 딸은 고등학교 선생인데 똑똑하고 예쁘고 아이들을 잘 가르친다고 했다.

딸들 사이에 아들이 하나 있는데 눈엣가시처럼 아들 생각만 하면 마음이 아프다고 하셨다.

부인을 떠나보내고 얼마 되지 않아 갑작스러운 질병으로 아들이 하늘나라로 갔다.

그때 병원 복도에서 내 품에 안겨 많이 우셨다.




며칠 전 그분의 딸에게 연락을 받았다.

아버지가 호스피스병원에 계신데 위중하시다고 했다.

저녁 늦게라도 찾아뵐 수 있으면 좋겠다며 양해를 구했다.

가족들이 허락해 주었다.

호스피스병실의 간병인도 나에게 자리를 양보해 주었다.

이번에는 내가 미주알고주알 다 일렀다.

전에 나에게 들려주셨던 이야기들을.

모두가 사랑이었다는 것을 안다고.

잘 하셨다고.

평안히 천국에 가시라고.

천국에서 다시 만나자고.

우리가 이렇게 만난 게 인연이라고, 기적이라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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