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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박은석 Jul 09. 2024

누구에게나 갈라파고스 신드롬이 찾아올 수 있다


1831년 12월 말에 영국 해군은 유럽에서 서쪽으로 항해하여 아메리카 대륙을 지나 태평양으로 가는 항로를 탐사하기 위해서 비글호라는 배를 출항시켰다.

이 배는 남미의 해안선들을 돌았고 뉴질랜드, 오스트레일리아를 거쳐 남아프리카까지 항해한 다음에 다시 브라질로 갔다가 1936년 10월에 영국으로 돌아갔다.

약 5년간의 탐사를 거치면서 영국은 세계 최강의 국가답게 각 지역의 해안선뿐만 아니라 위도와 경도에 따른 시간의 차이를 측량했고 각 지역에 서식하고 있는 희귀한 동식물들을 조사하기도 하였다.

이 작업에는 후에 진화론의 아버지로 불리는 찰스 다윈이 큰 역할을 감당했다.

사실 그는 신학을 공부하고 목사가 되려는 계획을 가졌던 인물이었다.

하지만 비글호에 올라탄 순간 그의 인생은 전혀 다른 방향으로 흐르기 시작했다.

다윈에게 가장 큰 영향을 끼친 것은 누가 뭐래도 갈라파고스제도와의 만남이었다.




갈라파고스제도는 남미 에콰도르 서쪽에 있는 스무 개 정도의 섬으로 이루어져 있다.

갈라파고스제도는 독특한 해류와 기후로 인해서 다양한 조류와 파충류 그리고 식물들이 서식하고 있었다.

각종 생물들에게는 고향과 같은 느낌을 주는 곳이었지만 사람들에게는 미지의 세계였다.

사람의 발길이 닿지 않았기 때문에 여러 동식물이 각자의 특성을 유지하며 서식할 수 있었을 것이다.

만약 사람이 자주 드나드는 섬이거나 사람이 거주하는 섬이었다면 그런 원시의 환경을 유지하기는 힘들었을 것이다.

어쨌든 찰스 다윈은 갈라파고스제도에서 여러 생물 종들을 관찰하였고 그 연구 결과를 기반으로 해서 <종의 기원>이라는 책을 썼다.

이 책은 당시 기독교 세계관으로 똘똘 뭉쳐 있었던 영국과 유럽 사회에 엄청난 충격을 주었다.

뿐만 아니라 오늘날까지도 창조론과 진화론의 논쟁이 붙을 때는 약방의 감초처럼 꼭 끼어들고 있다.




창조론과 진화론의 논쟁은 인류가 존재하는 한 계속 이어질 것 같다.

신앙적인 관점을 지향하는 사람은 창조론에 손을 들 것이고 신앙을 빼고 이야기하는 사람은 진화론에 손을 들 것이다.

그건 그들의 신앙과 자유에 맡겨버리자.

그리고 우리는 갈라파고스제도에서 누구나 얻을 수 있는 교훈을 생각해 보자.

갈라파고스제도에 다양한 생물이 서식할 수 있었던 것은 사람의 발길이 닿지 않았기 때문이다.

외딴섬들이었기 때문이다.

찰스 다윈에게는 그 덕택에 재밌는 연구를 할 수 있었겠지만 바꾸어 생각해 보면 갈라파고스제도는 세상이 급변하고 있었음에도 불구하고 전혀 세상의 변화에 보조를 맞추지 못하고 있었던 것이다.

유럽이 산업혁명으로 대대적인 변화를 겪고 있었을 때, 문을 꼭 걸어 잠그고 바깥세상에 대해서는 눈과 귀를 닫아버렸던 조선처럼 보인다.

좋은 말로는 전통의 보존이지만 다른 말로는 세상에 뒤처진 것이다.




경제학자들은 갈라파코스 신드롬을 조심하라는 말을 하기도 한다.

갈라파코스 신드롬이라는 말은 일본의 나츠노 타케시(夏野剛)라는 사람이 처음 꺼낸 말이다.

그는 휴대전화 인터넷망인 ‘아이모드’를 개발한 사람이기도 하다.

1990년대의 일본은 IT산업 분야에서 세계 최고였다.

그러다 보니까 일본 입장에서는 국제적인 기준들이 굉장히 수준 낮게 보였다.

국제적인 기준을 따르며 형편없는 제품을 만들기보다는 자기들 수준에 맞는 질 좋은 제품을 만드는 게 낫다고 생각했다.

수출을 못하더라도 내수 시장에만 전념해도 충분히 승산이 있다고 보았기 때문이다.

하지만 그 결과 세계 시장에서 일본의 IT 기업들은 주도권을 잃어버리게 되었다.

자기들만의 경기를 치르다 보니까 변화에 따라가지 못하고 국제대회에서 처참하게 망가지고 만 것이다.

갈라파고스 신드롬은 편안한 자리에 안주하는 순간, 누구에게나 언제나 나타날 수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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