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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박은석 Jul 21. 2024

인정받고 싶은 욕구


딸, 딸, 딸을 낳은 후에 아버지 어머니는 나를 낳으셨다.

아들을 보신 기쁨이 얼마나 크셨는지 내가 백일이 되었을 때 백일사진을 찍으셨다.

8월 말의 더운 여름이었다.

아들임을 증명하시려고 홀라당 벗겨놓고 찍으셨다.

내 생식기가 적나라하게 드러난 사진이 나왔다.

흑백사진이었다.

사진 찍는 일이 흔치 않은 때였다.

어디서 카메라 한 대 빌려 오면 그날은 가족사진 찍는 날이었다.

사진 인화료도 꽤 비쌌을 것이다.

그런데 아버지 어머니는 내 사진을 왕창 인화해서 여러 집에 나눠주셨다.

교회 다니던 동년배의 집사님들 집에는 여지없이 내 사진이 있었다.

동네 친구분들의 집에도 내 사진이 있었다.

우리 집 안방 천장 밑에 커다란 액자를 걸어두셨는데 그 액자에도 내 사진이 들어 있었다.

그 사진을 볼 때마다 부끄러울 때가 있었다.

사춘기 시절이었다.

친구들 집에 갈 때마다 몰래 내 사진을 훔쳐 오곤 했다.

꽤 고생했다.




아버지 어머니가 왜 내 사진을 안방에 걸어놓고 동네방네 나눠주셨을까?

그건 ‘나도 아들을 낳았다’는 것을 알리고 싶은 마음 때문이었을 것이다.

인정받고 싶은 마음이 있어서다.

그렇다.

사람은 누구나 인정받고 싶은 욕구가 있다.

사람의 기본적인 욕구가 여럿 있다.

대표적으로 식욕, 수면욕, 성욕을 이야기한다.

하지만 그에 못지않게 중요한 욕구가 바로 인정받고 싶은 욕구이다.

나를 낳으셨을 때 아버지 어머니에게는 세상에 이보다 더 좋을 수 없다는 마음이 들었을 것이다.

그러니까 비싼 돈을 들여서 내 백일사진을 찍고 그 사진을 뽑아서 친구들에게 나눠주신 것이다.

사진을 나눠줄 때마다 친구들이 축하해주었을 것이다.

그 말에 기분이 좋으셨을 테고 그 말에 가슴 뿌듯하셨을 것이다.

‘인정받는구나!’하는 생각이 들으셨을 것이다.

사람들에게 인정 한번 받기 위해서 아버지 어머니는 아낌없이 당신들의 것을 내놓으셨다.




내 아버지 어머니만 인정에 목말랐던 것은 아니다.

세상 모든 사람이 인정에 목말라한다.

맹자는 군자에게 3가지의 즐거움이 있다고 했다.

부모님이 생존해 계시고 형제들이 무고한 것, 하늘을 우러러보고 땅을 굽어보아 부끄러움이 없는 것, 천하의 영재를 얻어 가르치는 것이다.

그런데 천하의 인재를 만나기가 쉬운 일인가?

어렵다.

그런 인재를 알아보기는 쉬운가?

어렵다.

그렇다면 내가 천하의 인재인데 나를 알아보는 사람을 만나는 것은 어떤가?

그것도 어렵다.

공자도 자기를 알아봐 주는 군주가 있기를 바랐다.

15년 동안 중국 전역을 돌아다녔다.

하지만 공자를 알아봐 준 군주는 없었다.

15년의 세월을 보내고 고향으로 돌아오면서 ‘이 넓은 땅에, 수많은 군주 중에 나를 알아봐 주는 사람이 없구나!’하는 생각에 공자의 마음은 씁쓸했을 것이다.

공자니까 그 마음을 다스릴 수 있었겠지만 나 같은 사람이라면 어림도 없다.




내 마음속에 인정받고 싶은 욕구가 도사리고 있다.

아닌 척 하지만 아닌 게 아니다.

누군가 나에게 칭찬을 하면 그 말이 듣기 좋다.

“아니에요.”라며 손사래를 치지만 내 본심은 “맞아요. 제가 그래요.”라고 대답한다.

내가 부지런히 일하는 것도 인정받기 위해서이고 내가 바르게 살아가려고 하는 것도 인정받기 위함이다.

인정하는 말 한마디 때문에 재산을 다 거는 사람도 있다.

인정하는 말 한마디 때문에 목숨을 거는 사람도 있다.

흉년에 제주도민에게 구휼을 베풀었던 김만덕에게 정조대왕이 고맙다며 손 한번 잡아주었다.

전해지는 이야기에 따르면 김만덕은 임금님이 잡아준 손이라며 그 손을 비단으로 감싸고 씻지도 않았다고 한다.

삼국지의 관우, 장비, 제갈량, 조자룡은 모두 자신을 알아봐 주었다는 이유 때문에 유비 편에 섰다.

내 곁에 사람이 없다면 곰곰이 생각해 보아야 한다.

내가 다른 사람을 인정해 주고 있는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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